
이주환 특허법원 국제지식재산권법 연구센터 연구원(법학박사)
2019년 7월 9일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와 함께 부정경쟁방지 및 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이하에서는 편의상 “영업비밀보호법”이라고 칭한다)상 증액손해배상제도가 시행되었다.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6항과 제7항은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우선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6항은 “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고의적인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제11조에도 불구하고 제1항부터 제5항까지의 규정에 따라 손해로 인정된 금액의 3배를 넘지 아니하는 범위에서 배상액을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원이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하여 “재량으로”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을 “3배”이내의 범위에서 증액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증액손해배상의 인정대상과 증액한도 그리고 증액손해배상의 산정에 대한 재량권이 법원에 부여된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다.
다음으로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은 “제6항에 따른 배상액을 판단할 때에는 다음 각 호의 사항, 즉 ① 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 ② 고의 또는 손해 발생의 우려를 인식한 정도, ③ 침해행위로 인하여 영업비밀 보유자가 입은 피해규모, ④ 침해행위로 인하여 침해한 자가 얻은 경제적 이익, ⑤ 침해행위의 기간·횟수 등, ⑥ 침해행위에 따른 벌금, ⑦ 침해행위를 한 자의 재산상태, ⑧ 침해행위를 한 자의 피해구제 노력의 정도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법원이 손해배상액의 증액여부와 증액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8가지의 정황을 나열하고 있다. 이하에서는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의 인정대상, 증액한도, 8가지 정황에 대하여 살펴본다.
첫째,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의 인정대상은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이다. 즉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영업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가 규정하는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해당하여야 하고, 이와 동시에 이러한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고의”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영업비밀보호법 제2조 제3호는 가목에서부터 바목까지에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규정하고 있는데,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이 인정되려면 이 행위들 중 하나에 해당하여야 한다.
여기서 “고의”라는 것은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취지에 맞게 해석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도입에 많은 영향을 미친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exemplary damages)의 인정대상에 대하여 살펴본다. 미국에서 영업비밀 침해를 당한 자는 주법(state law)에 의한 구제와 연방법(federal law)에 의한 구제를 모두 받을 수 있다.
우선 주법에 의한 구제는 주마다 차이가 있지만, 미국 다수의 주는 통일영업비밀보호법(Uniform Trade Secret Act; 소위 UTSA 법)을 채택하고 있다. 미국 통일영업비밀보호법 제3조(b)는 “만약 고의적이고(willful) 악의적인(malicious)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존재한다면, 법원은 진보적인 손해배상액의 “2배”이내의 범위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2002년에 선고된 Cacique 판결에서 캘리포니아주 항소법원은 통일영업비밀보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이 인정되기 위해서는 피고가 “비난가능성이 있는 행위(egregious conduct)”를 하였다는 것이 증명되어야 한다고 판결하였다. 이런 측면에서 통일영업비밀보호법 제3조(b)가 규정하는 “고의적이고(willful) 악의적인(malicious) 영업비밀 침해행위”는 비난가능성이 있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해석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미국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관하여 2016년에 선고된 Halo 판결에서 연방대법원이 역사적으로 미국법원들은 ‘willful’, ‘wanton’, ‘malicious’, ‘bad-faith’, ‘deliberate’, ‘consciously wrongful’, ‘flagrant’ 등과 같은 단어에 의하여 특정되는 행위에 증액손해배상을 인정하여 왔다고 강조하면서, 증액손해배상은 전형적인 특허침해행위가 아니라 “비난가능성이 있는 특허침해행위”에 대하여 인정되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상당히 유사한 입장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연방법에 의한 구제는 2016년에 제정된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Defend Trade Secrets Act ; 소위 DTSA 법)에 의하여 이루어진다. 미국은 기존에 미국 경제스파이법(Economy Espionage Act ; 소위 EEA 법)이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형사사건만 연방법원에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었던 것을 변경하여, 영업비밀 침해 관련 민사사건도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하였다. 따라서 영업비밀 관련 피해자는 앞에서 언급한 미국 통일영업비밀보호법을 채택한 주법에 의하여 주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하든지, 연방법인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에 의하여 연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구체화하고 있는 18 U.S.C. 1836(b)(3)(C)는 “만약 영업비밀이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willfully and maliciously) 침해되었다면, 법원은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의 2배 이내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미국 통일영업비밀보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규정과 거의 동일하다. 2017년에 선고된 Xoran Holdings 판결에서, 제6순회항소법원은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은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고의적으로 행하여진 것일 뿐만 아니라 악의적으로 행해진 것이어야 한다고 판시하였다. 제6순회항소법원은 법문에 충실하게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대상을 판단하고 있다.
결국 이상에서 살펴본 미국 영업비밀보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대상은 주법과 연방법 모두 법문상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이고, 이에 대하여 미국법원은 “비난가능성이 있는 행위”라고 판단함으로써 미국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의 기본 법리를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인정대상은 법문상으로는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규정되어 있지만, 이는 증액손해배상이 인정될 수 있는 정도의 “비난가능성이 있는 영업비밀 침해행위”로 해석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따라서 우리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서의 “고의”의 개념은 우리 민법과 형법 등에서 규정하는 “고의”의 개념과는 구분된다.
둘째,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은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의 “3배”이내의 범위에서 증액이 가능하다. 이는 앞에서 살펴본 미국 연방영업비밀방어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와 통일영업비밀보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2배”이내의 범위에서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을 증액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것과 차이점이 있다.
우리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와 우리나라 타법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즉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대리점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등에서도 손해배상액의 증액한도를 “3배”로 규정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증액한도는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의 증액한도와 여러 타법에서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증액한도를 동일하게 규정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원래 미국 불법행위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서는 손해배상액의 상한이 없어서 과도한 고액의 손해배상액이 산정될 우려가 크다고 비판받아 왔는데, 우리 특허법과 영업비밀보호법에 도입된 증액손해배상제도와 여러 타법에 도입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이러한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하여 일률적으로 증액한도를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의 “3배” 이내라고 규정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중국은 자국의 특허법에 “5배”이내의 범위에서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을 증액할 수 있는 증액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고, 상표법에서는 기존에 “3배”이내의 범위에서 전보적인 손해배상액을 증액할 수 있었던 것을 “5배”이내의 범위로 증액할 수 있도록 개정하여 시행하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증액손해배상제도에서의 증액한도는 해당 법률의 목적과 이를 법률을 운영하는 각국의 정책에 따라 탄력적으로 정해질 수 있다고 판단할 수 있다.
셋째, 법원은 영업비밀 침해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액의 증액여부와 증액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이 규정하는 8가지 정황을 고려할 수 있다.
미국 징벌적 손해배상 모델법 제7조(a)는 미국법원이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정황으로, ① 피고가 야기한 불법행위의 성격과 원고 및 타인에 대한 영향, ② 전보배상액, ③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고가 지급하거나 지급할 벌금, 과료, 배상액, 부당이득액, ④ 피고의 현재 또는 장래의 재정적 상황 및 각 상황에 대한 배상의 효과, ⑤ 불법행위로 인하여 피고가 획득한 이윤, 이익, ⑥ 선의의 타인에 대한 배상액의 부정적 영향, ⑦ 불법행위를 한 피고가 취하거나 취하지 않은 구제조치, ⑧ 정부나 기타 준칙을 정하는 기능을 수행하는 기관에 의하여 공포된 준칙의 준수 여부, ⑨ 배상액과 관련한 악화 요소 또는 경감 요소를 제시하고 있다.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 법문은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법원이 손해배상액의 증액여부와 증액정도를 판단함에 있어서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이 언급하는 8가지 정황을 모두 고려하여야 것처럼 기술되어 있지만,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가 규정하는 8가지 정황과 마찬가지로, 법원은 “당해 사건에 나타난 정황”에 근거하여 고의적인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한 자의 행위에 내재하는 비난가능성의 정도를 판단하여 손해배상액의 증액여부와 증액정도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이 언급하는 “고려하여야 한다.”는 “고려할 수 있다.”로 개정되어야 한다.
우리법원은 이미 하도급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등에서 개별 법령이 규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함에 있어서 고려할 수 있는 정황에 대하여, 이들 정황을 모두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사건에 나타난 정황에 근거하여 징벌적 손해배상을 산정하고 있다. 특히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이 규정하는 8가지 정황 중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 제1호가 규정하는 “침해행위를 한 자의 우월적 지위 여부”이다.
이 정황은 특허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는 규정되어 있지만, 하도급법, 대리점법, 가맹사업법, 제조물책임법 등 타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서도 규정되어 있지 아니하다. 이 정황은 영업상 혹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자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하여 타인의 영업비밀 침해행위를 한 경우, 고액의 증액손해배상이 산정될 수 있도록 하는 정황이 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이 정황은 영업상 혹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이 보유하는 영업비밀을 침해할 경우, 고액의 증액손해배상액이 산정될 수 있도록 할 수 있다. 결국 영업비밀보호법 제14조의2 제7항 제1호가 규정하는 정황에는 영업상 혹은 거래상 우월적 지위에 있는 대기업에 의하여 영업비밀 침해를 입을 수 있는 중소기업을 더욱 더 강하게 보호하려는 취지가 반영된 정황이라고 생각된다.
이상에서 2019년 7월 9일부터 시행된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영업비밀보호법에 도입된 증액손해배상제도는 원래 영미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으로, 비난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한 자를 민사상 손해배상제도에 의하여 처벌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영업비밀보호법에 증액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것은 영업비밀 침해행위가 사회적으로 비난받아야 할 정도라면 형사처벌과 별도로 이에 대한 강한 민사상 제재가 필요하다는 사회적 인식에 기반하고 있다. 앞으로 영업비밀보호법상 증액손해배상제도가 효율적으로 활용됨으로써, 비난가능성이 있는 행위를 한 영업비밀 침해자로부터 손해를 입은 영업비밀 보유자를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구제수단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