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 대기업이 배달 시장에 뛰어든다. 코로나19가 불러온 비대면 일상화와 근거리 소비 확산으로 배달 영역에서 새로운 성장 기회를 찾기 위해서다.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위기감도 엿보인다. 일부 e커머스와 스타트업 전유물로 여겨져 온 배달 산업이 이제 업종 구분을 넘어 미래 쇼핑시장의 최대 승부처로 떠올랐다.
6일 업계에 따르면 롯데는 온·오프라인연계(O2O) 스타트업 달리자와 손잡고 이달 중순부터 롯데백화점 강남점에서 식품관 음식 배달 서비스를 시작한다. 백화점 식품관의 신선식품과 입점 매장의 즉석 조리 음식을 점포 인근 2만 가구에 배달하는 서비스다.
백화점이 배달 사업에 나선 것은 현대백화점과 갤러리아에 이어 세 번째다. 현대백화점은 지난 7월 식당가와 식음료 매장에서 조리한 음식을 1시간 안에 배달하는 '바로투홈' 서비스를 업계 처음으로 선보였다. 갤러리아백화점 역시 이달부터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명품관의 식품관인 고메이494에서 프리미엄 배달 서비스 '김집사블랙'을 시작했다.
이들은 치열한 배달 전쟁에서 차별화를 꾀했다. 배달로는 받기 어려운 고품질의 델리·디저트와 최상급 농축수산물로 틈새시장을 노렸다. 여기에 단순 음식 배달을 넘어 생필품 배달과 심부름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유통 대기업만의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고객의 집 문 앞까지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갤러리아는 장보기 배달에 더해 세탁물 픽업과 약국 방문 등 필요한 심부름을 추가로 요청할 수 있도록 했다. 배달 음식도 실시간 일대일 채팅을 통해 고기 두께, 굽기 정도까지 맞춤 주문이 가능하다. 롯데도 롯데온을 통해 밀키트는 물론 화장품, 마스크팩 등 1인 가구에 적합한 600여개 생필품을 배달한다. 이용시간도 오전 1시까지 가능하다.
백화점이 앞다퉈 배달 서비스에 나선 것은 관련 시장이 빠르게 신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배달 주문 등 음식 서비스 거래액은 9조7365억원으로 전년 대비 84.6% 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국내 배달 음식 시장 규모를 이보다 2배 이상 큰 20조원 규모로 추정했다.
업계에선 코로나19 확산의 영향으로 올해 배달 시장 규모가 30조원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비용보단 시간에 가치를 두는 '게으른 경제'가 점화시킨 배달 시장에서 고강도 거리 두기는 성장 촉매가 됐다. 이젠 기업들도 가격 중심 경쟁에서 빠른 배달로 경쟁 포인트를 전환했다.
그동안 고객의 온라인 이탈을 막는데 집중해 온 유통 대기업들도 집객 전략보다는 라스트마일 강화에 초점을 맞춰 사업 전략을 꾸려 나갈 것으로 전망된다. 스마트폰으로 모든 소비가 가능해진 상황에서 공간보다는 시간의 중요성이 커졌다. 특히 소비자 입장에선 배송과 배달, 서비스의 경계가 무의미해졌다.
이들 대기업은 골목상권 침탈 논란을 의식해 아직까진 배달 생태계에서 서비스 공급자 역할만 맡고 마지막 라스트마일 영역은 스타트업 외주 형태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배달 산업 성장세와 급변하는 소비 트렌드에 따라 결국엔 주문 중개와 고객 최접점 배달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구축할 공산이 높다.
업계 관계자는 “사회적 거리 두기 최대 수혜 업종인 배달 산업의 성장세는 일시 현상에 그치는 것이 아닌 일상 소비 형태로 자리 잡게 됐다”면서 “거스를 수 없는 시장 흐름에 따라 유통 대기업의 배달 산업 진출도 더 빨라지고 광범위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