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KEA)가 전자부품수급종합지원단을 공식 출범하고 '부품 중심 산업구조 혁신'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부품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개편하지 않으면 한국 전자산업의 퍼스트 무버 지위는 한순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절박감이 작용했다. 코로나19와 미중 무역분쟁, 일본 수출규제 등 영향으로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국산 부품 사용률도 높여가기로 했다. 양산성능평가 지원사업 등을 통해 전자산업 '오픈이노베이션'을 활성화, 흔들리지 않는 전자강국을 건설하겠다는 중장기 비전을 제시했다.
◇'흔들리지 않는 전자강국 건설' 밑거름
전자부품수급종합지원단은 전자산업이 '퍼스트 무버'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부품 중요성을 재인식해야 한다는 진단 끝에 나온 대안이다.
오픈이노베이션으로 부품 경쟁력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스마트폰, 가전 같은 세계 1위 제품이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 분야에서는 미국, 일본 대비 낮은 부품경쟁력을 가졌다.
세트 대기업이 부품 협력사에만 정보를 공유하는 폐쇄적·일방적 부품 생태계에서는 부품은 물론이고 세트 경쟁력마저 하락할 것이라는 위기감이 강하게 작용했다. 일본 토요타-도레이, 미국 인텔-퀄컴 협력 사례에서 보듯 개방적 생태계에서 핵심 기술이 탄생한다는 점을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지원단의 첫 과제인 양산성능평가 지원사업은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부품 경쟁력을 끌어올리려는 방법 가운데 하나다. 기술개발은 완료했으나 수요기업 성능평가가 이뤄지지 않은 부품을 발굴해 실제 생산라인에서 평가하도록 돕는 제도다. 부품을 완제품에 적용해 양산평가를 하고 성능개선까지 도움으로써, 우수한 부품이 사장되는 '데스 밸리' 현상을 극복해보자는 것이다.
부품 공급망을 의미하는 '글로벌 밸류체인(GVC)'이 대폭 후퇴한 현 시점에는 부품 국산화율보다 국산 부품 사용률을 의미있게 봐야 한다는 진단도 나온다.
글로벌 부품 공급망이 흔들리는 상황에서는 '부품 자립도' 역시 중요한 경쟁력 척도가 될 수 있다는 시각이다.
임호기 전자부품수급종합지원단장은 “국산화율이 높아도 세트 기업이 써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면서 “양산성능평가 지원사업은 국산 부품 사용률을 높임으로써 GVC 문제에 대응하려는 것”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신뢰도 하락한 GVC…이제는 RVC가 중요
GVC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고 있다는 점도 전자부품수급종합지원단 출범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우리나라는 GVC에서 가장 큰 혜택을 입었으나 멀게는 글로벌 금융위기, 가까이는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규제, 코로나19 사태 영향으로 GVC 신뢰도가 크게 떨어진 상황이다.
우리나라는 GVC 의존도 55%로 프랑스(53%)·독일(51%)·일본(45%)·미국(44%) 등 주요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아 외부 충격에 취약한 구조다.
특히 일본과 무역적자 192억달러 가운데 95%가 소부장에서 나올 정도로 전자산업의 일본 의존도가 높고, 중국에 대한 소부장 의존도도 30%에 달한다. 중국 의존도가 80%를 넘는 국내 기업은 2만9000개에 달한다.
코로나19로 와이어링 하네스 공급이 중단되고, 미중 무역갈등 영향으로 CCTV 업체가 중국 하이실리콘 칩을 공급받지 못할 위기에 처하는 등 GVC 신뢰도 하락은 국내 산업에 직접 영향을 미치고 있다.
세계 각국은 GVC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제조업 경쟁력 강화, 리쇼어링 장려, 역내 밸류체인(RVC) 체제 개편 등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다시 말해 당분간은 '개방과 세계화'보다는 '보호무역주의와 반세계화'가 득세하면서 GVC 안정성이 위협받는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가 내부 또는 신뢰할 수 있는 역내에서 산업의 핵심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게 중요하다.
삼성증권은 “각국은 이전과 같은 세계화 진전을 추구하기보다 자국 내 고용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에 골몰하게 될 것”이라면서 “GVC 변화 방향에 초점을 맞춰 대응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부품지원단, 부품-세트 잇는 '가교역할' 집중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문가, 지원단이 기술로드맵 작성에 머리를 맞대고 공유를 추진, 오픈이노베이션 생태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부품과 세트의 '가교역할'을 하겠다는 것이다.
장기로 부품산업의 품목별, 기술별 정확한 기술수준과 국산화 실태, 경쟁사 현황 등을 분석하고 극복방안을 제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주요 완제품별 중장기 시장현황 및 전망, 기술트렌드 및 로드맵 등을 파악할 방침이다.
국내 전자부품 현황과 생산업체, 스펙 정보 등을 라이브러리로 구축하고 이를 알리고 판매까지 가능한 B2B거래 플랫폼을 운영한다. KEA는 과거 전자부품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일정 부분 성과를 거두었으며, 이번에는 이를 혁신적으로 개편해 전자업계에 지속적인 도움을 제공하겠다는 복안이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