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중고·폐배터리센터 '중복 우려'...“분류 기준 없는데 센터부터 설립”

환경부, 연내 시흥·포항에 센터 구축
산업부, 제주 완공·나주에 구축 추진
업계 "국가차원 등급분류 표준 마련
배터리 소유권 문제 먼저 해결해야"

산업통상자원부에 이어 환경부가 전기차 중고·폐배터리의 재사용(Reuse)·재활용(Recycling)을 위한 배터리센터를 구축한다. 센터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등으로 재활용하기 위해 수명이 다된 전기차 배터리를 수거해 등급을 분류하는 등 후방사업 지원 역할을 한다.

관련 업계는 배터리센터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두 부처의 사업 모델 중복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에 가장 중요한 등급분류 기준이 아직 없는 상황에서 시장 혼돈만 가중시킬 수 있다는 우려다.

7일 업계에 따르면 환경부가 연내 경기도 시흥을 시작으로 내년 6월까지 대구와 홍성(충남), 정읍(전북) 모두 4곳에 전기차용 배터리센터를 구축한다. 이들 센터는 해당 지역에서 수명이 다된 전기차용 배터리를 수거해 배터리의 충·방전 상태 등으로 등급을 분류하는 시설을 갖추게 된다. 등급 분류에 따라 배터리의 재사용 혹은 재활용이 결정되는 구조다.

앞서 산업부도 같은 목적의 배터리센터 구축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189억원(국비 80억원 포함)의 예산을 투입해 지난 6월 제주에 배터리센터를 완공했고, 올해 초 전남 나주에도 226억원(국비 93억원 포함)을 투입해 2024년까지 배터리센터를 구축하기로 했다.

두 부처의 배터리 재활용·재사용 센터는 지역 중복은 피했지만, 센터에서 전기차 배터리를 수거, 분류하는 역할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에 산업계는 배터리 재사용·재활용에 가장 중요한 등급분류 기준 조차 없는 상황에 두 부처가 각기 다른 기준을 적용할 방침이라, 초기부터 시장 혼돈이 가중될 수밖에 없다며 사업성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또 등급분류에 따른 사용처 발굴이나 현재 국가 소유인 배터리에 대한 사용권이 제한된 상황이라, 배터리 후방산업에 대한 민간 역할도 불투명한 상태다.

이에 업계는 배터리센터 구축보다 국가차원의 통일된 배터리 등급분류 표준 문제와 배터리 소유권에 대한 법적 조치를 먼저 해결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국가차원에 배터리 등급분류 기준과 배터리 소유권 문제가 선행돼야 정상적 후방산업이 생겨날 수 있다”며 “산업부와 환경부의 사업이 중복되는 만큼, 환경부는 배터리 분류 기준을, 산업부는 사용처 발굴 역할을 맡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고 말했다.

현재 환경부는 대기환경보호법에 따라 국가 보조금을 받고 구매한 모든 전기차의 배터리는 차량 폐차 시 정부에 반납하게 돼 있다. 배터리 소유권이 국가이기 때문이다.

이에 환경부가 배터리에 대한 충·방전 등 데이터를 확보해 등급분류에 반영하면 보다 정밀한 분류체계를 갖출 수 있다. 이후 산업부가 실증사업을 통해 단순 ESS뿐 아니라, 전기차 충전소,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태양광·풍력발전 연계형 ESS, 전기오토바이, 전동휠체어 등 분야별 수요처 발굴에 필요한 기준을 마련하는 역할이 필요해 보인다.

BMW코리아가 민간 업체와 함께 2019년 8월 전기차 중고배터리를 활용해 ESS와 풍력발전을 연계한 전기차 충전소를 구축했다. 국가법 제한으로 소비자에게 새 배터리를 교환해줬고,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력재판매가 불가능함에 따라 충전소는 무료로 운영돼 사업성이 없는 상황이다.
BMW코리아가 민간 업체와 함께 2019년 8월 전기차 중고배터리를 활용해 ESS와 풍력발전을 연계한 전기차 충전소를 구축했다. 국가법 제한으로 소비자에게 새 배터리를 교환해줬고, 전기사업법에 따라 전력재판매가 불가능함에 따라 충전소는 무료로 운영돼 사업성이 없는 상황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환경부가 수거와 매각을 위한 등급 분류를 하고, 산업부가 재사용 제품에 사업화를 위한 추가 등급 분류 등의 역할로 논의가 되고 있어 중복 사업은 피할 것”이라며 “환경부 센터는 배터리뿐 아니라 다른 용도의 이차전지와 태양광 패널까지 포함한 미래 폐차원 거점 수거 센터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중국과 일본은 전기차용 배터리 수거 및 등급분류, 사용처 발굴 등은 전적으로 민간기업이 맡고 있다. 정부는 필요한 시장 규제를 개선하고 사용처 발굴 등 실적에 따른 보조금 등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