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겨울에 시작한 바이러스는 가을을 앞둔 지금까지도 잦아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생각보다 길었던 여름 동안 이 바이러스의 감염력은 더욱 무시무시해진 것 같다.
신문과 각종 매체는 매일 치료제와 백신의 개발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이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있는 의약품의 개발은 아직 요원하기만 하다. 사람들은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이야기하고 있고, 이는 이 바이러스와의 공존이 인류가 향후 영원히 겪어야 할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느 과학 포럼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와의 삶(Living with Corona 19 virus)'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코로나와 함께하는 삶, 즉 생활 속 방역이 일상이 되는 삶이다. 마스크가 일상적인 옷차림이 되고, 개인과 개인 사이에 적절한 거리를 항상 유지해야 하는 삶, 비대면의 의사소통 방식이 기본이 되는 사회, 감염병에 대한 공포가 사회 저변을 지배하는 그런 세상이 오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가 시작된 초기에만 하더라도 이 상황이 오랫동안 지속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때는 짧고 확실한 조치와 결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다. 필자가 일하고 있는 안전성평가연구소 또한 긴급하게 비상대책본부를 구성해 연구소 내 방역체계를 정비했고, 코로나19 대응 지원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기업과 연구소의 치료제와 백신 개발 그리고 각종 방역물품의 독성연구를 지원했다. 최근에는 정부의 3차 추가경정예산을 통해 치료제와 백신의 독성평가시험 지원을 위한 예산을 받기도 했다. 이제 코로나19 창궐 후 반년이 지난 지금 이렇게 마련한 긴급 조치들을 앞으로 언제까지 운영해야 할지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년 전인 15세기 말에는 임진왜란이라는 전란이 이 땅을 휩쓸고 있었다. 조선은 이 국난에 대비하기 위해 기존에 병조의 일부 기능을 수행하던 비변사에서 전쟁에 대한 대응을 포함한 전반적인 국무를 수행하도록 했고, 이에 따라 재상 중심의 통치기구였던 의정부와 육조의 기능은 대폭 축소됐다. 문제는 전란이 끝난 이후에도 임시로 강화한 비변사의 기능을 그대로 유지한 점이다.
이는 전후 복구와 국방력 강화라는 명목상의 이유도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비변사 체계가 전쟁으로 강화된 왕권 유지에 유리했기 때문이며, 특히 전란 종료 후에도 씻어낼 수 없었던 전쟁에 대한 공포는 이 조치에 대한 심적인 정당성까지 쥐어줬다.
이 비변사 체계로 조선은 건국이념이었던 관료 중심의 정치체계를 후기까지 유지하지 못했고, 결국 왕권이 약화한 조선 말기에 들어서 그 약점을 드러내며 국가 전체에 균열을 일으키게 된다. 이는, 임시 조치를 장기화하였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비변사의 예는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지금의 우리 또한 이제 코로나19로 인한 임시적 조치의 상시화를 고려할 때가 되었다. 즉, 비상(非常)을 일상(日常)으로 전환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이제 코로나19를 고려하지 않았거나, 혹은 이 사태가 한시적이라는 전제로 수립된 모든 전략과 계획은 휴지통에 버려야 할 때가 됐다. 지금의 이 사태가 앞으로 장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전제에서 우리의 시스템을 다시 설계해야 할 것이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긴급하게 만들어 임시로 운영한 모든 체계는 이제 상시적인 것으로 전환해 나가야 할 것이며 그것이 포스트 코로나를 준비하는 첫 번째 일이 돼야 할 것이다. 지금과 같은 임시적인 시스템으로는 이미 시작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것을 신속히 그리고 성공적으로 이루어낸 조직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주체가 될 것이다.
남주곤 안전성평가연구소 연구전략본부장 jknam@kitox.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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