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식간에 거래액 15배↑...일부 암호화폐거래소 '자전거래' 의심

의도적 유동성 투입 '부풀리기'
A사 월평균 1700억→2조원대
업계 "업권법 통해 기준 마련
장기적 상생 위해서 근절해야"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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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암호화폐거래소에서 '자전거래' 정황이 포착됐다. 거래량이 평상시 대비 10배 이상 증가한 거래소도 생겨났다.

최근 코인빗 압수수색 등으로 자전거래 논란이 불거진 가운데 특금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자전거래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일부의 관행을 시정해야 한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본지는 13일 암호화폐 통계 서비스 코인힐스가 집계한 국내 거래소의 최근 수개월간 누적 거래액 데이터를 단독 입수했다. 코인힐스는 코인마켓캡과 함께 업계에서 암호화폐 통계 공신력을 확보한 서비스로 꼽힌다.

코인힐스 데이터에 따르면 국내 중소 규모 거래소 A사는 2019년 10월부터 2020년 1월까지 월 평균 거래액이 1700억원이었다. 해당 거래소는 지난 2월부터 거래액이 급상승하기 시작했다. 평균 1000억원대를 유지하던 거래액은 2월부터 6월 사이 월평균 2조8000억원대로 폭등했다. 순식간에 거래액이 15배 넘게 늘어나는 기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또 다른 중소형 거래소 B사는 같은 기간 월평균 거래액이 2600억원에서 9700억원으로 급등했다. 4배 가까이 거래량이 뛴 것이다.

두 사례 모두 점진적으로 거래액이 증가한 것이 아니었다. 순식간에 월별 거래액이 솟구치는 현상이 나타났다. 같은 기간 타 거래소 상승폭과 비교해도 이례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자전거래를 통한 인위적 거래액 상승이라고 분석했다. 자전거래는 거래소가 의도적으로 유동성을 투입해 거래액을 부풀리는 행위다. 업계 물밑에서 이어지는 관행 가운데 하나다.

암호화폐 재단 관계자는 “올해 초 해외 기관들이 비트코인 선물을 대량 매도하고 비트코인 반감기도 별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등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았다”면서 “특정코인을 상장하고 가격을 올리는 허위가장매매를 한 것으로 보인다. 암암리에 이뤄진 자전거래 결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거래량이 폭등한 올해 2월 전후 상황을 살펴보면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가 본격화되는 시점이었다. 비트코인 상승세가 2월 중순부터 꺾였고, 3월엔 3분의 1 수준으로 대폭락했다. 또 국내 업계에선 자전거래 등 혐의를 받았던 업비트 운영진이 1월 말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던 이슈가 있었다. 투자자들이 거액 투자금을 들고 시장으로 몰릴 모멘텀은 아니었다.

업계에서 자전거래가 벌어지는 이유는 거래량 상승을 통해 특정 종목, 거래소를 홍보하는 의도가 숨어있다. 거래소 업계 핵심 지표가 거래액이기 때문이다. 거래액이 많을수록 거래소, 종목의 선호도가 높아진다. 그러나 자전거래로 거래액이 부풀려지면 투자자를 호도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업계에서도 논란 대상이 된 이유다.

자전거래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경찰이 자전거래를 통해 거래량을 부풀리고 시세를 조작한 혐의로 코인빗을 압수수색하면서 자전거래 이슈는 업계 화두로 재조명됐다.

업계에선 암호화폐 자전거래를 타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권법을 마련해 명확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받는다.

복수의 고위 관계자는 “업계 전체가 자전거래를 하는 것은 아니다. 거래소 위상에서 차지하는 거래액 중요성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이라면서 “자전거래로 거래소 순위가 하루 아침에 수직상승하기도 한다. 거래소든 종목이든 투자자에 잘못된 시그널을 주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이어 “주식시장에선 자본시장법으로 금지된 행위다. 공시 하에 종목에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과 물밑에서 이뤄지는 자전거래는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라면서 “업계가 장기적으로 상생하기 위해서라도 근절돼야 한다. 업권법을 조속히 마련해 주식시장처럼 감독기구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호기자 youngtige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