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출연연 연구현장 위기, 이대로 괜찮을까?'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은 지난 50여년 동안 국가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묵묵히 맡은 바 소임을 다해 왔다. 출연연이 주도해온 과학기술이 대한민국의 경제 성장을 견인해 왔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동안 국가 과학기술 개발의 최전선에서 활약한 출연연 연구자들은 오늘날 전에 없이 심각한 사기저하를 느끼고 있으며 깊은 상실감에 빠져 있다.

연구자의 사기 저하는 작게는 창의적 연구와 성과 창출, 크게는 국가 경쟁력의 근간이 될 과학기술의 위상이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다양하겠지만 우선 정부가 연구자들이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정년 환원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해야 함을 강조하고 싶다.

1998년 출연연 정년이 65세에서 61세로 축소됐다. 이후 20여년 동안 과학기술계는 정년을 다시 65세로 돌리는 정년 환원을 통해 과학 인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것과 이공계 인재들의 출연연 기피 현상을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실제로 출연연 연구인력이 외부로 유출되는 사례를 보면 출연연 정년보장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 6월까지 자발적으로 퇴직한 출연연 연구자는 593명에 달하고, 이 중 57%는 긴 정년을 보장하는 대학 교수직을 택했다.

출연연이나 대학의 박사급 초기 임용 시기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으로 일반적인 취업 사이클보다 매우 늦다. 그런데 IMF 당시 출연연은 정년 축소 대상에 오른 반면 대학은 정년이 축소되지 않았다. 그 결과 출연연의 평균 근속 기간이 매우 짧아졌다. 출연연의 근속기간은 25년, 대학은 30년, 공무원 및 교원은 38년으로 출연연이 가장 짧다.

현장에서 활발하게 일할 수 있는 경험과 핵심 노하우를 갖춘 연구원들이 대부분 60대 초반에 정년퇴임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매우 큰 인적 자원 낭비가 아닐 수 없다. 역대 노벨상 수상자들도 평균 55세에 의미 있는 연구 업적을 이뤘고 평균 70세에 노벨상을 수상했다.

그러나 정부는 정년 환원의 당위성과 장점을 묵살한 채 도리어 2015년 출연연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행했다.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에 도달한 시점부터 임금을 삭감하는 대신 정년을 보장하거나 정년 후 고용을 연장하는 제도다. 그런데 정부가 정년 연장 대상이 아닌 출연연에 임금피크제를 적용한 것은 제도의 기본 취지에도 크게 어긋난다.

교원 및 의사, 정년이 65세인 과기특성화대학, 고등과학원, 기초과학연구원 등 일부 전문직 직종 종사자들은 임금피크제 적용 대상이 아니다.

출연연은 매번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국가 연구개발(R&D) 혁신방안으로 제시돼 왔다. 그런데 정작 출연연의 종사자들은 전문직 대상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불평부당한 제도로 인해 낙후되고 황폐화되는 출연연 연구현장의 심각한 사기저하와 연구자들의 박탈감, 그리고 이로 인한 연구환경의 훼손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출연연 연구자는 국가와 사회의 미래를 책임진다는 사명감과 긍지를 바탕으로 한국의 과학기술계를 지탱해왔다.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닫고 정치적 이슈로만 활용하는 셈법은 이제 그만둬야 한다. 사명감과 긍지가 없는 출연연은 동력 없는 배와 같아서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를 희망적으로 전망하기 어렵다.

정부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심화된 저성장, 저소비, 저고용에 대한 대응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제시했다. 정부는 이제 과학기술의 주축이 돼 온 출연연에 대해서도 존중과 신뢰를 바탕으로 사회적 대타협을 끌어내야 한다. 그 대화의 물꼬를 트는 일이 '출연연의 정년 환원 실현'이다. 이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할 때다.

남승훈 출연연연구발전협의회총연합회(연총) 회장 shnahm@kris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