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정유업계가 재고는 늘고 재고평가이익은 줄어드는 이중고에 이어 '유럽연합(EU) 봉쇄'까지 삼중고에 빠졌다. 정유사들의 3~4분기 실적 개선에 적신호가 켜졌다.
한국석유공사 페트로넷에 따르면 올해 6월 미주지역 원유(Crude) 재고는 6억9700만배럴로 코로나19가 본격화하기 전인 2월 6억2000만배럴 대비 12.41% 증가했다. 중유와 경질유 등을 포함할 경우, 같은 기간 총 재고는 7억2400만배럴에서 8억3900만배럴로 증가율이 15.9%까지 확대된다. 공급 대비 수요가 줄면서 재고로 쌓아둔 원유가 늘었다는 의미다.
이런 추세는 다른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같은 기간 유럽과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의 원유와 석유제품 등 총 재고는 각각 5억7100만배럴에서 6억2700만배럴, 1억7500만배럴에서 1억7800만배럴로 9.8%, 0.26% 증가했다.
가장 큰 이유는 소비 둔화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 노선이 줄고 이동 거리 제한 등에 따라 운송용 수요가 급감한 영향이 크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코로나19가 아직 종식되지 않은 만큼 최근 재고 상황도 지난 6월과 비교해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원유는 넘쳐난다. 국제 원유 가격은 하향 안정화에 접어들었다. 지난달 초 배럴당 45달러까지 오른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11일 42.85달러로 5% 안팎 하락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미국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가격도 이번 주 들어 배럴당 40.75달러에서 40.60달러로 약 1% 내렸다. 이는 정유사들에는 악재다. 앉아서 재고평가이익이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유업계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수출 여건마저 악화됐다. 코로나19 2차 대유행이 현실화하면서 EU가 재봉쇄 조치를 내렸거나 검토하기에 이르렀다. EU는 참여 국가만 31개국에 달한다. EU에서 석유제품 수요가 급감할 경우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으로 공급물량이 과잉될 수 있다.
다만 최근 들어 정제마진은 일부 회복했다. 이달 들어 7일까지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2.02달러로 지난 9월 평균 0.25달러 대비 소폭 증가했다. 정유사들이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공장 가동률을 줄인 데다 동절기 대비 비축용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보인다. 한 국내 정유사의 경우 공장 가동률을 80%까지 낮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수요가 본격 회복하기 전까지는 겹악재 여파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유업계 다른 관계자는 “코로나19 이후 역마진을 지속했던 항공유 정제마진이 최근 플러스 전환하는 모양새지만, 이는 항공유 공급이 줄어든 상황에서 일시적 비축용 수요가 늘어났기 때문”이라면서 “언제든지 석유제품 마진이 하락세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
류태웅 기자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