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 회장의 경영철학을 대변하는 1993년 프랑크푸르트 선언의 핵심은 '양에서 질'이라는 대전환으로 요약된다.
품질 위주 경영으로 전환해야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21세기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1996년 '디자인 혁명의 해'를 선포한 이 회장은 2014년 '마하 경영'을 내세우며 다시 한 번 근본적 전환을 촉구했다. 제트기가 음속을 돌파하려면 설계도부터 엔진·소재·부품을 전면 개편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계를 돌파하라'는 주문이었다. 삼성그룹은 마하 경영을 위해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 신기술 개발, 근본적 혁신, 소통·상생 등을 기업 목표로 설정했다.
이 회장의 경영철학은 삼성그룹 임직원 뇌리에 깊숙이 박히면서 삼성 제품이 '글로벌 초일류'로 도약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95년 3월 삼성전자 구미사업장 운동장에서는 그 유명한 '제품 화형식'이 벌어졌다. 이 회장의 '품질 경영'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이었다. 휴대폰 등 삼성전자 제품 15만점이 불탔다. 1994년 국내 4위였던 삼성전자 휴대폰 시장 점유율은 이듬해 19%를 달성하며 1위 자리에 올랐다. '애니콜 신화'의 시작이자 오늘날 스마트폰 세계 1위의 시작이었다.
반도체에 대한 이 회장의 남다른 집념도 결실을 봤다.
메모리 반도체와 시스템LSI 등 반도체 부문은 일찌감치 세계 1위 고지를 점령했다. 1992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64메가 D램을 개발하면서 반도체 강자가 됐고, 이후 삼성은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 번도 글로벌 1위를 내주지 않고 질주했다.
1969년 흑백 TV를 생산한 이후 37년 만인 2006년 글로벌 TV 시장에서 소니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고, 2012년에는 갤럭시 시리즈로 애플을 따라잡고 스마트폰 시장 세계 1위를 달성했다.
글로벌 경영 환경 급변으로 이 회장이 눈물을 삼켰던 분야도 있다. 바로 자동차다. 젊은 시절부터 자동차에 관심이 많던 이 회장은 10여 년의 준비 끝에 1995년 부산 강서구 신호공단에 자동차 공장을 착공했다. 그러나 삼성자동차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결국 2000년 르노에 인수돼 르노삼성자동차로 바뀌었다.
이 회장의 자동차 사업 열망은 이재용 부회장이 넘겨받아 이어가고 있다. 완성차 사업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전장사업을 강화한 것이다. 삼성은 2016년 미국 전장기업 하만을 80억달러(약 9조원)에 인수했다. 삼성이 보유한 반도체, 디스플레이, 정보기술(IT), 스마트폰 등 분야와 시너지를 내겠다는 청사진이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