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투자 심리 위축…"제조업은 더 춥다"

ICT제조업 비중, 7년새 4.2%까지 감소
코로나19 여파 경기 악화…양극화 뚜렷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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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 기반 CCTV를 개발하는 A사는 최근 해외 벤처캐피털(VC)로부터 45만달러 규모 투자를 받았다. 기술 차별성을 인정받아 해외에서 자금지원을 받았다.

사물인터넷(IoT) 기기 제조업체 B사는 반려동물 건강관리 제품을 개발해 얼리어답터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얻었지만 투자 라운드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시고 있다. B사와 비슷한 시기 창업했던 반려동물 IoT 스타트업 다수가 자금을 구하지 못해 문을 닫고 있다.

B사 대표는 “제조 스타트업이 투자 받기는 하늘의 별따기 수준이 됐다”며 “하드웨어는 각종 센서를 통해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기본 베이스가 되는데, 이 저변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으면 소프트웨어 산업 역시 제대로 발전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경기 악화로 벤처업계 전반에 투자 심리가 위축된 가운데, 특히 투자 단절로 인한 타격이 하드웨어·제조 스타트업에 집중되고 있다. 소프트웨어·플랫폼 스타트업이 비대면 수요를 기회 삼아 활로를 찾는 반면에 제조업은 뾰족한 타개책이 없어 스타트업들 사이에서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28일 중소벤처기업부가 발표한 3분기 벤처투자 동향에서도 ICT제조업 분야에 대한 신규 투자 비중은 감소하고 있다. 올해 들어 정부의 소재·부품·장비 중소기업 육성 정책 등에 따라 투자 규모가 전년 대비 소폭 늘었지만, 감소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2013년까지 전체 벤처투자에서 21.3%를 차지했던 ICT제조업 분야에 대한 투자 비중은 올해 9월 기준으로 4.2%까지 감소했다.

고성능 필터 솔루션을 제공하는 스타트업 C사 대표는 “정부가 육성 중인 소부장 분야도 직접적으로 연관된 반도체 분야가 아니고선 대부분 찬밥 신세”라고 털어놨다.

일반 투자자들이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투자형 크라우드 펀딩에서도 양극화 추세가 두드러진다. 와디즈가 발간한 '스타트업 펀딩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투자자 선호 상위 5개 영역은 식음료(26%), 교통·차량(13%), 생활가전(10%), 라이프스타일(9%), 데이터·솔루션(7%)로 제조 영역 비중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 상위 5개 영역은 환경·에너지(37%), 금융·보험(13%), 식음료(9%), 의료·바이오(7%), 데이터·솔루션(5%)순으로 집계됐다. 식음료를 포함 제조업은 투자 수요가 모두 급감했다. 올해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소비심리 위축과 경기 악화 영향으로 이와 같은 경향은 더욱 심화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VC를 포함 투자자들이 제조 스타트업 투자를 기피하는 원인은 크게 두 가지다. 기술과 시제품이 좋더라도 제품 양산 단계까지 변수가 많아 불확실성이 크다. 제조 원가 및 물류비 비중이 높아 자금 회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성장 속도가 더디기 때문에 투자 규모 대비 기대 수익도 플랫폼 사업과 비교하면 높지 않은 편이다.

다만 제조 스타트업은 시장 진입장벽이 높아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고용에서도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정부 차원에서 대기업 수요를 연계한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해 민간 투자 수요를 대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은 이유다.

이기대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이사는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이 제조 스타트업 한계를 해결할 방안 중 하나”라면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연계해 산업을 키울 정책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