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과 기술을 접목한 '리걸테크'와 원격진료 분야에서 국내 산업 성장이 글로벌 시장 대비 크게 뒤처졌다는 지적이다. 국내 온라인 플랫폼과 핀테크가 고속 성장하는 동안 법률과 의료 분야 ICT 도입은 정부 규제와 인프라 부족으로 발목을 잡혔다는 분석이다.
5일 아산나눔재단·스타트업얼라이언스·코리아스타트업포럼·아마존웹서비스(AWS)는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를 통해 글로벌 시장 대비 국내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부진한 산업으로 리걸테크·원격진료·인공지능(AI)을 꼽았다. 반면 온라인플랫폼과 핀테크는 글로벌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평가했다.
시장조사업체 트랙슨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전 세계 리걸테크 유니콘(기업가치 10조원 이상 비상장기업) 및 이머징 유니콘 수는 25개로 집계되지만 이 중 국내기업은 하나도 없다. 리걸테크 분야 투자 규모 역시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미국 19억6000만달러(약 2조2171억원), 영국 1억1500만달러(약 1300억원)에 달하지만, 한국은 같은 기간 총 1200만달러(약 135억원)에 그쳤다. 대부분 국내 리걸테크 스타트업은 투자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국내 리걸테크 산업 성장이 더딘 요인으로는 '판결문 데이터' 확보가 어렵다는 점이 꼽힌다. 종합법률정보시스템을 통해 열람 가능한 판결문은 전체 대법원 판결의 약 3.2%, 하급심 판결의 약 0.003% 수준에 불과하다. 리걸테크 선도국인 미국과 영국 등은 기본적으로 모든 판결문을 즉시 실명 공개한다.
국내 판사들은 판결문 공개 확대에 반대 입장이다. 금태섭 전 의원이 20대 국회 때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변호사들이 94%가 판례 공개에 대해 찬성한 반면에 판사 78%는 반대했다.
반대 사유로는 '개인정보 유출 우려' '무죄추정의 원칙 훼손' '비실명화 작업에 따른 막대한 비용 소요' '판례 위변조 우려' 등이 꼽혔다. AI를 통한 데이터 비식별화 기술을 도입할 경우 극복 가능한 문제로 여겨진다.
국내 원격진료 분야 성장이 더딘 이유는 규제 때문이다. 한국은 글로벌 GDP 기준 상위 15개국 중 유일하게 법으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이 때문에 2020년 기준 비대면 진료 업체 수가 미국 773개, 영국 73개로 늘어나는 동안 한국은 2개 확보에 그쳤다.
디테일한 정부 가이드라인 부재와 민간 의료진의 참여 부족이 개선점으로 꼽혔다. 원격진료 확대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인 '의료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처방약 배송으로 인한 오남용' 등에 대한 기준이 제대로 논의되지 않아 발전이 더디다는 지적이다. 한국과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일본은 1997년부터 제한적 비대면 도입을 시작, 20년 이상 세부 가이드라인을 정비해 왔다.
안지수 배인앤드컴퍼니 부파트너는 “우리나라는 제한적 비대면의료 도입 과정에서 국가 중심의 시범사업을 추진해, 민간을 배제해왔다”며 “민간의료 참여를 활성화할 동인을 제공하고, 정부와 민간이 가이드라인에 대해 세부적 협의를 거치면서 중장기 성장계획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형두기자 dudu@etnews.com
2020 스타트업코리아 보고서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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