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기기 역사는 X선 발견 전과 후로 구분된다. 인체 내부를 볼 수 없던 시대에는 서양 의학이나 한의학이나 수준이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인체 내부를 투영할 수 있는 X선을 의학에 활용하면서 서양 의학은 급속도로 발전할 수 있었다. 해부하지 않고도 인체 해부학적 구조를 볼 수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1895년 X선을 처음 발견한 뢴트겐이 부인 뼈를 바라보며 느낀 놀라움은 처음 달에 착륙했던 인류의 경이로움 이상이었을 것이다. 이게 진짜 뼈의 모습인가 의심했을 것이다. X선 발견 이후 꾸준한 연구를 통해 검사 결과의 신뢰도를 구축하고 나아가 의료기기로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왔다.
한의학적 진단은 대체로 사람 감각에 의존해왔다. 최근에는 한의사 진단 정량화를 위한 의료기기가 개발되고 있다. 기기의 정확한 진단을 위해서는 임상연구 기반의 충분한 데이터가 필요한데 아직은 데이터가 부족해 한의학 정량화가 늦춰지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의료기기 개발 방법은 임상에서 쓰이는 진단 방법이나 그 기전이 확립된 후 시작되는 후향적 방법을 선택하고 있다. X선 발견과 같이 생체정보 측정 가능성을 먼저 확인한 후 의료분야에 적용하는 전향적 방법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래야 뒤처진 한의학 정량화 방법이 성취될 것이라 생각한다.
손목 맥을 진단하는 맥진, 혀를 진단하는 설진, 복부를 진단하는 복진, 네 가지 체질을 진단하는 사상체질진단 등 한의 진단은 이미 개발된 한의진단 기기로 정량화가 가능하다. 앞으로는 이런 기기를 통해 얻은 다양한 생체신호를 해석해 새로운 진단에 역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기존에 개발한 복진 장치를 경량화해 일상생활 생체신호를 측정하며 한방의 변증진단은 물론 서양의학 복부 진찰에 적용할 수 있다.
인공지능(AI)을 이용한 진단 방법을 위한 기기개발도 마찬가지다. 특정 질환 진단을 위한 기기개발이 아닌 다양한 생체 신호를 측정할 진단장치를 마련한 후 이를 활용해 의료시스템에 반영해야 할 것이다. 스마트워치를 이용해 생체신호를 수집하고 질환과의 연관을 연구하지, 생체신호와 질환의 연관성을 연구한 후 스마트워치를 개발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생체정보에는 의미가 없는 정보가 없다. 특히 인체 내부의 상태를 보여주는 생체정보 변화는 외부 상태로 나타난다. 그 예로 인체 내부 상태가 안면, 음성, 맥, 호흡, 피부, 땀, 눈물과 같은 분비물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내부 특성을 알 수 없었던 과거, 외부 특성으로 내부 상태를 진단하려는 시도가 AI 시대에 들어와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손목 맥을 이용해 심박도 변화, 혈압 측정뿐만 아니라 당뇨 특성의 확인이 가능하게 됐고, 음성 특성으로 파킨슨병을 진단하려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한의학 진단 방식과 매우 유사하기에 외부의 유의미한 신호를 찾아내려는 시도는 한의학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유의한 외부 신호를 찾기 전에 가능한 많은 생체신호를 신뢰 있게 측정하도록 하는 기기개발이 선행돼야 할 것이다. 그렇기에 앞으로는 이런 측정기기를 확보하는 것이 그 분야의 발전을 이루고 커다란 산업을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김근호 한국한의학연구원 미래의학부 책임연구원 rkim70@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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