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유사 법인에 대한 초과 유보소득세 도입 방침에 중소기업이 반발하자 정부도 과세 제외 범위에 대한 고심이 크다. 국회에서도 호응을 받지 못하면서 논의도 비관적인 상황이다. 비상금 재원·배당 간주 과세 정당성, 이중과세 문제가 쟁점이다.
9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달 국회에서 유보소득세 과세를 포함한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기재부는 개인 유사법인의 당기순이익 중 배당을 제외한 유보소득의 최대 50% 또는 자본금의 10% 중 높은 금액을 적정 유보소득으로 간주할 방침이다.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자가 80%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법인이 대상이다.
기재부가 추진하는 정책은 사실상 기업이 배당하지 않고 쌓아둔 돈을 주주에게 배당한 것으로 간주해 배당소득세(15.4%)를 물리는 게 골자다. 과세 기준 연도는 오는 2021년이고 실제 과세는 2022년부터 시작된다. 이는 1인 법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고율(최고 42%)인 소득세 부담을 회피하는 현상을 방지하겠다는 취지다.
◇조세저항에 중소기업 가세
최근 정부가 밀어붙이던 과세제도가 사실상 여론과 국회에 밀려 백지화되고 있다. 주식양도세 세액공제, 대주주 요건 강화가 동학개미와 여론전에서 밀린 것이 시발점이었다.
유보소득세도 안전지대가 아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비상장 중소기업 30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한 결과 90.2%가 반대했다. 88%는 제도를 폐기하거나 유예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았다.
업계는 대부분 중소기업이 가족기업인 점을 감안하면 거의 모든 법인이 유보금에 대한 간주배당 과세제도 대상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업계는 “정부가 지적한 것과 달리 소규모 법인을 운영하는 경영주들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으로 전환하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며 반박했다.
아울러 “추후 주주 배당이 이뤄지면 어차피 소득세를 물게 돼 있다”며 “내년부터 사내 유보금에 세금을 매길 경우 법인세와 함께 이중과세라며, 유보금이 없으면 투자여력이 떨어진다”고 비판도 나온다.
새로운 유형의 소득세를 신설하는데 얼마만큼의 세금을 더 내게 될지도 모른 정책을 추진해선 안된다는 점도 지적사안이다.
배당간주 소득세를 물리겠다는 부분도 논란거리다. 배당간주 소득세란 배당을 안 하더라도 개인사업자 사업소득에 세금을 물리듯 세금을 매기겠다는 논리다.
한 세무사는 “실현되지 않은 소득에 과세를 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배당을 전제로 '선(先)과세'할 경우 유보소득세를 낸 기업이 이후 사정이 안 좋아져 손실을 냈을 때 세금 환급하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해명 나선 기획재정부
'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유보금에도 과세를 하느냐'는 유보소득세 논란이 지속되자 정부는 경제단체들과 간담회를 열고 반박했다. 기획재정부는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 도입 취지와 설계 방안을 조목조목 설명, 해명에 나섰다. 우선 배당간주 소득세 정당성 논란과 관련해 세제실 관계자는 “일반 법인들한테 통상적으로 적용되는 제도는 아니고, 조세회피 방지 차원에 적용된다”며 “일종의 의제 규정으로 초과 유보소득과세가 귀속이 될 경우 과세를 하고 실제 배당 실행 시 소득세를 비과세되도록 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일상적인 경영 활동을 위해 쌓아둔 돈은 과세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 부담이 크게 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기재부는 “1인 법인을 통해 상대적으로 고율(최고 42%)인 소득세 부담을 회피하는 행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무엇보다 과세 대상이 되는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우선 정부는 미래의 불확실성 대비를 위한 일정 수준 유보는 비과세 대상으로 인정한다는 방침이다. 유보소득이 배당가능한 소득의 50% 및 자기자본의 10% 이하이면 과세 대상이 아니다.
법인세 차감 후 소득 5억원이 발생한 법인이 3억원을 주주에게 배당한 경우 배당간주 금액이 발생하지 않는다. 법인세 차감 후 소득 5억원이 발생했지만 자기자본이 50억원인 경우에도 배당간주 금액이 발생하지 않는다.
아울러 적극적 사업법인이 당기 또는 2년 내에 투자·부채상환·고용·연구개발(R&D)을 위해 적립한 금액은 유보소득에서 제외된다.
제조업체 A법인이 법인세 차감 후 소득 100억원 중 주주에게 20억원을 배당한 후 2년 후 기계장치를 구매하기 위해 30억원을 적립하면 과세 대상이 아니다. 이 경우 법인세 차감 후 소득에서 주주배당금을 제외한 80억원이 유보소득이다. 그 중 투자를 위한 적립금액 30억원을 제외하면 과세 기준인 배당 가능한 소득 50%에 미치지 않는다.
정부는 일시적으로 사업이 위축돼 부동산, 주식·채권 등 수동적 수입 비중이 확대될 수 있는 점을 고려해 2년 연속 수동적 수입이 과다한 경우에만 적극적 사업법인이 아닌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기재부 관계자는 “유보소득세는 개인사업자로 충분히 영업할 수 있는데도 세금을 피하기 위해 법인을 만들고 배당, 투자, 고용도 하지 않는 기업을 대상으로 했다”며 “제도적 보완을 하지 않고는 개인사업자와 소규모 법인의 세 부담 불평등이 심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야 모두 '난색'
기재부는 이달부터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 법률안을 국회에서 논의 후 12월 초까지 확정할 방침이다. 이어 1월 초까지 시행령을 만들 예정이다.
이 같은 정부 설명에도 국회 반응은 미지근하다. 코로나19로 경기가 부진한데 중소기업의 경영 부담만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어서다. 세제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여야 모두 유보소득세 도입에도 난색을 보였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조세소위원장인 고용진 민주당 의원은 최근 중소기업중앙회 간담회에서 “빈대 잡으려고 초가삼간 태운다는 말이 있는데 이런 우를 범하지 않아야 한다”며 법안 수정을 시사했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개인유사법인 과세제도가 향후 미칠 영향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다는 시각도 있다.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기획재정부에 과세대상인 법인 및 개인 규모, 증세규모 등을 질의했다. 기재부는 이와 관련, 과세대상 내국법인 및 초과유보소득, 배당금액 규모 등은 추정하기 어렵다고 서면 답변했다. 또 과세대상인 '최근 10년간 개인유사법인 현황' 자료 요청에 대해서는 최근 10년간 가동법인 대비 1인이 100% 주주인 법인 집계 현황만을 제출했다고 전했다.
한편 기재부는 시장과의 소통을 통해 제외범위를 보다 폭넓게 규정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난 간담회에서 건설업계는 토지 구입비용을, 해운업계는 선박구입비용을 유보소득에서 제외시켜 달라고 주장했는데 이를 포함한 재계 건의사항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국세무포럼에서 김갑순 동국대 교수는 “조세회피 대상 법인만을 콕 집어서 규제하지 못할 경우 현행 세제가 안고 있는 개인과 법인 간 기업형태 선택의 중립성 왜곡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며 “정상적인 기업활동 위축을 가져와 시장경제 효율성과 세수 측면에서 소탐대실할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유재희기자 ryu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