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원자력연 로봇응용연구부, 강하면서 섬세한 '암스트롱' 개발

옛 소련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태를 다룬 미국 드라마 '체르노빌'에서는 사후 지붕잔해 처리 과정에서 로봇이 등장한다. 아쉽게도 제대로 기능하지 못했다. 결국 '바이오로봇(사람)'이 피폭을 무릅쓰고 처리에 동원되는 참사가 그려졌다.

체르노빌에서 볼 수 있듯 재난 상황에서 로봇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람의 접근을 차단해야 하는 원자력 재난의 경우 더욱 그렇다. 다행히 현재 로봇은 1980년대 그것과는 다르다. 특히 우리나라는 뛰어난 기술력을 갖고 있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로봇응용연구부의 로봇 '암스트롱'을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원자력연 로봇응용연구부가 개발한 암스트롱
원자력연 로봇응용연구부가 개발한 암스트롱

원자력연 내 로봇실증시험시설은 입구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을 줬다. 건물 외부에는 로봇 벽화가, 연구실 입구에는 영화 '아이언맨' 캐릭터 그림이 그려져 있다. 내부 높은 곳에는 태극기도 걸려 있다. 자유로운 모습과 함께 국익에 기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엿보인다.

처음 접한 암스트롱은 위용이 대단했다. 사람만한 크기였다. 특이하게 사람을 매우 닮았으며 팔은 관절까지 구현돼 있다.

현장을 안내한 임기홍 박사는 “오랜 고민 끝에 이런 형태가 나왔다”고 말했다. 다양한 도구를 쓸 수 있도록 하고자 사람을 본 떴다는 설명이다. 전용 장비로 구현한 곡괭이나 삽, 굴착용 파쇄기 등을 장착해 활용할 수 있다. 앞으로는 사람이 쓰는 상용 공구도 쓸 수 있도록 연구를 진행 중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암스트롱은 이름처럼 강했다. 언뜻 무거워 보이는 물건도 손쉽게 들어보였다. 동행한 박종원 박사는 “한 팔로 100㎏ 무게를 지탱할 수 있고, 문도 힘으로 뜯어낼 수 있다”고 웃으며 말했다. 강한 힘을 내는 유압장치를 쓰되 이를 소형화해 힘과 크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다. 이진이 박사는 “버튼 누르기, 랜선 꽂기와 같이 세밀한 작업도 가능하다”고 자랑했다.

암스트롱을 조작하는 마스터 디바이스
암스트롱을 조작하는 마스터 디바이스

이러한 특성은 독특한 조작방식과 연결돼 시너지 효과를 낸다. '마스터 디바이스'로 부르는 팔 모양의 조작 장치다. 사용자가 이를 움직이면 암스트롱 팔이 그대로 움직인다. 디바이스 관절 각도 정보를 측정해 산업용 블루투스로 전달하면, 암스트롱이 재현하는 방식이다. 기자가 직접 디바이스를 움직이자, 지체 없이 암스트롱의 팔도 이를 재현해냈다.

박 박사는 “웨어러블 장치, 조이스틱도 써봤는데 현재 방식이 가장 직관적이고 뛰어났다”고 전했다.

하체는 상체와 달리 사람과 차이가 있었다. 지지 용이성을 위해 무한궤도를 썼다. 큰 힘을 내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지지가 필요하다는 이유다. 허리는 상하 리프팅이 가능해 작업 높낮이 조정이 가능하다. 로봇 안정성은 당연히 뛰어나다. 사람이 한 시간 노출 시 수일 내 사망하는 1시버트 이상 방사선 노출, 수 천도 고온도 견뎌낸다고 했다.

로봇응용연구부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암스트롱을 발전시켜 왔다. 개발 철학은 그저 '일 잘하는 것'이라고 했다. 직관적이고 빠르게, 큰 힘을 내면서 섬세하게. 간단해 보이지만 절대 쉽지 않은 목표 달성을 위해 2018년부터 달려왔다.

부러진 그리퍼. 연구진은 철체 그리퍼가 부러질정도로 실험을 반복해 왔다.
부러진 그리퍼. 연구진은 철체 그리퍼가 부러질정도로 실험을 반복해 왔다.

이 결과 연구진은 기술력에 자신감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임 박사는 “암스트롱이 모든 로봇보다 훌륭하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큰 힘을 내면서 섬세하기까지 한 것으로는 이런 예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