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 “중고차 시장 선진화” vs “30만 생계 달렸다”

현대자동차가 그동안 대기업 참여가 제한됐던 중고차 시장 진출 의사를 공식화하면서 기존 중고차 업계와 대립하는 양상이다. 현대차가 시장에 뛰어들면 불신이 팽배한 중고차 시장이 투명하게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는 층과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엇갈린다. 대기업의 시장 진출 제한 규제를 5년 더 연장할 지를 최종 결정해야하는 중소기업벤처부는 이 결정을 1년 가량 미룰 정도로 이번 현안은 '양날의 칼'로 주목된다.

서울시내 한 중고차 매매단지.
서울시내 한 중고차 매매단지.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시장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중고차 매매시장에 대한 소비자 인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에서 응답자의 80.5%는 국내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혼탁하고, 낙후됐다고 인식한다고 답했다. 중고차 시장이 투명·깨끗하다고 생각하는 응답자는 11.8%에 그쳤다. 중고차 시장이 불투명·혼탁·낙후됐다고 꼽은 이유로 '가격산정 불신'(31.3%)이란 의견이 가장 많았고, 이어 '허위·미끼 매물'(31.1%), '주행거리 조작·사고 이력 등에 따른 피해'(25.3%)라는 답이 많았다. 특히 완성차 대기업의 중고차 매매시장 진입을 찬성하는 소비자(63.4%)가 반대하는 소비자(14.6%)보다 4배 이상 많았다. 국내 중고차 거래 시장에 대한 불신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최근 경기도가 지난 6~7월 허위매물을 올려놓은 것으로 의심되는 중고차 온라인 매매 사이트 31곳의 판매상품을 조사한 결과 95%가 '가짜' 매물이였던 사례도 나왔다. 이들 사이트에 올라온 중고차 3096대 중 2946대(95.2%)가 허위매물이었다. 이들 딜러들은 구매할 수 없는 허위매물을 게재하고, 차량 가격을 터무니없이 낮게 표시하는 방식으로 소비자를 유인해온 것이다.

여기에 벤츠·BMW 등 수입차 브랜드에만 허용된 제조사 인증 중고차 제도에 대해서도 국내 기업의 역차별 문제가 계속 제기돼 왔다.

업계 관계자는 “대기업 골목상권 진출에 대한 여론은 통상적으로 부정적이기 마련이지만, 이번 현안은 오히려 현대차가 여론의 지지를 받는 모습”이라며 “그만큼 기존 중고차 거래 시장에 대한 소비자 불신이 켜졌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반면에 기존 중고차 업계는 완성차 대기업이 중고차 시장에 진출하면, 30만명의 생계가 위협받는다며 현대차의 시장 진입을 반대 입장하고 있다.

중고차 매매업은 2013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며 대기업 시장 참여가 제한돼왔다. 그러나 지난해 초 관련 규정이 일몰됐고, 지난해 11월 동반성장위원회가 중기부에 대기업 진출을 허용하자는 의견을 내면서 중기부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간 371만대가 판매되면서 178만대 규모의 신차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 연간 거래액만 약 12조원으로 추정된다.

영세 소상공인 중심인 기존 중고차업계의 반발이 만만치 않은 상황에 한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는 지난달부터 대기업 중고차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집회을 열고 있다.

곽태훈 회장은 “자동차 제조사가 판매·유통까지 하는 전세계 유례없는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중고차 매매까지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며 “중고차 매매업은 대기업 진출로부터 보호받아야 하는 소상공인 자영업자들로,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중고차 업계는 현대차가 시장에 진출하게 되면 5년 미만의 중고차 매물을 선점, 막강한 시장 지배력을 가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완성차업계와 기존 중고차업계가 중고차 유통과정을 개선하는 노력을 하는 등 상생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