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인해 모든 대국이 온라인으로 진행된 2020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는 비상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 대회였다. 결과적으론 한국기사로 유일하게 8강에 오른 신진서 9단이 결승(11월 2~3일)까지 진출하며 선전했지만 중국 커제 9단에게 패하며 준우승에 그쳤다. 커제 9단은 올해 우승으로 이세돌 9단과 함께 대회 최다우승(4회) 타이기록을 갖게 됐다.
2월 LG배에서 메이저 대회 첫 우승을 차지한 신진서 9단은 결승대국전까지 57승 5패, 승률 91.94%로 절정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바둑팬의 기대 또한 컸다. 하지만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일을 그르쳤다. 결승3번기 1국에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터진 것이다. 당일 대국 중 신진서 9단이 초반 마우스 선을 정리하던 과정에서 터치패드를 건드리면서 의도치 않은 곳(하변 1선 21수)에 착점했다. 꺼놓아야 했던 노트북 터치패드 기능이 작동 중이었기 때문이다.
신 9단은 별다른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고, 커제 9단이 다음 수를 착점하면서 대국은 이어졌다. 하지만 신 9단은 이 착점 미스의 불리함을 극복하지 못하고 120수 만에 돌을 거둬야 했다. 전반적으로 순조로운 경기 진행이었지만 이번 대회 결정적 '옥에 티'가 아닐 수 없다.
국후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한국기원은 '2020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결승1국 착점 오류에 관한 한국기원의 입장'에 관한 글을 3일 오후 4시쯤 홈페이지에 올렸다. 한국기원 측은 “이번 문제로 바둑팬 여러분에게 실망을 안겨드린 점 깊이 사과드린다”면서 “혹시나 있을 다른 원인도 철저히 조사하겠다. 담당자, 책임자 문책을 포함한 재발 방지에 만전을 기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열차는 이미 떠난 뒤였다.
첫판을 놓친 신 9단은 2국서 초반 우세를 지키지 못하고 반집패를 당하며 우승컵을 내줘야 했다. 신진서 9단은 준우승 후 인터뷰에서 “터치패드에 끌려서 버벅대는 순간에 마우스를 흔들었는데 미스가 난 것 같다. 이미 일어난 일이니까 어쩔 수 없고 선수나 한국기원이 신경써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왜 어필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일단 충격이기도 했고, 마우스 미스가 결국은 실수인 부분이 있으니까 사실 할까말까 고민을 많이 하긴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커제 9단은 시상식 후 “미스가 나왔을 때 크게 놀랐다. 상대가 시합을 잠시 정지시키거나 이의를 제기할 줄 알았는데 누구도 내게 연락하지 않았다. 기다리면서 상대가 신고하지 않기에 계속 두었다. 사실 미스 한 수로 흑이 큰 손해를 입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 시점에서 어떤 형식이든 '이의제기'가 있어야 하지 않았나라는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커제 9단 역시 중국 현지 불안정한 인터넷 상황으로 몇 차례 접속 장애를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은 커제 9단 우승으로 지난 2015년부터 6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 국가별 우승 횟수에서도 중국(11회)이 한국(12회)을 턱밑까지 쫓아와 한국 선수단의 분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성률기자 nasy23@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