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으로 가는 배를 구하지 못한 수출기업의 타격이 현실화했다. 지난 3분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해상운임이 최근 급등하면서 중소기업은 물론 대기업도 웃돈을 주지 않으면 배를 구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바닷길보다 비싼 항공운송을 택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블랙프라이데이 등 연중 최대 성수기를 앞두고 있어 정부는 국적컨테이너선사와 긴급 회동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11일 업계 취재를 종합하면 중소·중견 기업은 물론 삼성전자, LG전자 같은 대기업마저 북미향 수출 배편을 구하지 못하는 등 직접 타격을 받았다.
창원사업장에서 생산한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대형가전을 부산항을 통해 실어나르는 LG전자는 3분기 이후 수출이 늘면서 전체 물량의 20%를 인상된 가격에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 연간 계약 물량 외 추가 물량은 시세로 치르는 것이다.
삼성전자도 광주공장 냉장고를 미국으로 보내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중국, 베트남, 태국 등에서도 가전을 생산하고 있어 아시아~북미 항로 운임 급등 영향을 받고 있다.
배를 구하지 못한 A 중견 가전사는 미국 요구 물량의 50%만 수출하고 있다. 대기업 B사는 해운사로부터 운송량 감축 통보를 받았다. 해운사는 이익이 많이 나는 중국 물건을 싣기 위해 한국 물량을 줄이고 있다. C사는 해상운임을 50%나 올려줘야 했다. 중견기업 D사는 납기일을 맞추기 위해 항공운송을 택했다. 10월 기준 북미향 항공 운송료는 지난해 대비 62% 급등했다.
배가 동나면서 해상운임이 급등했다. HRCI 용선지수는 6일 994포인트(P)를 기록, 2008년 9월 24일 이후 12년 만에 처음으로 1000P 돌파를 눈앞에 뒀다. 용선지수가 치솟는 것은 그만큼 배를 빌리기 어렵다는 의미다.
상하이 컨테이너 운임지수(SCFI)는 6일 1664를 기록, 200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나타냈다. 같은 날 미국 서안 기준 운임지수는 1월 초 1636달러/FEU(40피트 컨테이너) 대비 2.3배 오른 3871달러/FEU를 기록했다.
미국 소비 회복이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된다. 미국 대통령 선거 이후 블랙프라이데이 등 쇼핑 시즌과 연말연시용 화물 수요가 급증했다. 더욱이 코로나19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미국 내 생산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수출이 많은 한 가전사 최고경영자(CEO)는 “미국은 코로나19가 워낙 심한 데다 통제도 안 된다”면서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서 아시아 쪽으로부터의 수요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관측에 따라 전망이 갈리지만 해운 대란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KB증권은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와 비교할 때 미국 소매 판매 감소 기간이 짧다는 점에 주목하고 재고 보충을 위한 물동량 증가 기간이 짧을 것으로 내다봤다. 해운 대란이 길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다. 반면에 대신증권은 운항을 쉬고 있는 유휴 컨테이너 선복량이 1.6%에 불과하다는 알파라이너 통계를 인용, 컨테이너 수급 균형은 2022년까지 빠듯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지난 10년간 장기불황에 시달려 재무적으로 취약한 선사들이 투자를 머뭇거리는 상황이다. 지난 2017년의 한진해운 파산도 영향을 미쳤다.
문성혁 해양수산부 장관은 이날 컨테이너선사 사장단과 긴급 회동을 열고 대책을 논의했다. 해수부는 일부 외국적 선사가 화주와의 기존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하는 등의 불공정 거래 관행에 대해 관리 감독을 강화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이번 해운 수요 급증은 한시적인 것이어서 해운업계에 무조건 투자를 요구하기는 무리가 있다”면서 “한시적으로 급증하는 물동량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한편 정부의 세제 지원 등을 통해 해운업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할 수 있는 장기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