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스트(ZEST)' 사전적 의미는 '풍미, 맛, 비상한 흥미, 열정'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저서 교양영어사전2에서 ZEST는 그리스어로 오렌지나 레몬 껍질 조각을 뜻하는데 음식이나 음료수에 들어가면 '풍미'를 더했고, 더 나아가 비유적으로 '열정'을 불러 일으킨다고 해서 이 같은 뜻을 갖게 되었다고 소개했다.
이 글에서 ZEST는 '제로 이미션 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러지(Zero Emission Science and Technology)' 약어다. 직역하면 오염물질을 전혀 배출하지 않는 과학과 기술로써 녹색화학을 떠 올릴 수 있다. 녹색화학은 제품 생산을 위한 반응공정과 분리기술 원료, 용매, 촉매 등과 제품 자체 유해성, 그리고 제품 분해 가능성과 이로 인한 인체와 환경 위해성에 이르기까지 화학제품의 전주기적인 과정을 개선 대상으로 한다.
녹색화학 개념을 조금 더 적극적으로 반영하면 연구개발 단계에서부터 환경 유해물질 배출을 최소화하는 움직임을 선도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상용제품 생산과정에서의 배출 규모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적을 수 있지만 특정 이슈 해결책을 찾는 경우 글로벌 경쟁체계에서 사용되고 있는 연구개발용 화학물질의 사용량도 무시 못할 수준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삶을 완벽하게 바꾸고 있는 스마트폰, 수소전기차, 태양전지 등과 같은 디바이스와 시스템에 사용되는 핵심소재 생산을 위해서는 인체와 환경에 유해성이 높은 화학물질 사용이 불가피하다.
환경에 나쁜 영향을 주지 않을수록 우리가 원하는 수준의 소재생산에 도달하지 못한다. 당장 실험실에서 잠재적 독성이 있는 화학물질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세계 최고 수준의 성능 좋은 수소전기차 핵심소재를 만들어보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학생들과 연구원들은 아마도 막막할 수밖에 없다. 친환경적일수록 분명 반응속도가 느릴 것이고 인체 위해성이 적을수록 완벽한 산화와 환원공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원하는 수준의 촉매입자 크기와 특성을 관찰하지 못할 것이다. 이러한 서로 대립하는 요소 사이의 균형, 일명 트레이드 오프(trade-off)는 그 간격을 좁히기가 쉽지 않다.
트레이드 오프 관계는 이미 많은 분야에서 사용하고 있다. 이 중 경영학에서는 가격과 품질경쟁력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그런데 재밌게도 최근에는 가끔 이 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있다. 실례로 가격이 제일 싸면서 품질도 평균 이상이 되는 기업이 생긴 것이다. 이를 경영학에서 아웃페이싱 전략이라고 한다.
우리는 창의적 사고를 통해 녹색화학 분야에서 아웃페이싱과 같은 효과를 얻어야 한다. 조건이 제한적이면 새로운 선택지를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다. 즉, 창의적 사고를 이끌어내는 엉뚱한 가설의 시작일 수 있다. 다소 느린 공정으로 수많은 단계의 연속일 수 있다. 소재 생산 공정비용 상승으로 최종제품 구매가가 비싸질 수 있다. 그래도 연구개발단계에서부터 환경유해물질 배출을 줄일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제품 생산에서도 녹색화학 본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전남은 대한민국 경제를 견인해 온 석유화학산업과 제철산업이 모두 존재해 환경유해물질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지역이다. 하지만 자연환경 측면에서 태양광 발전과 풍력발전 경쟁력이 가장 높은 녹색의 땅이기도 하다. 최근 10여년 전 출범했던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산하 녹색기술센터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통폐합 수순을 밟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위기는 기회다'란 말이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그린 뉴딜의 국내 산업 육성 성과와 해외 진출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새로운 연구기관을 지역균형 뉴딜 관점에서 출범시켜야 한다. 머지않아 풍미와 열정이 있는 녹색과학기술 메카를 보고 싶다.
이재영 광주과학기술원 지구·환경공학부 교수 jaeyoung@g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