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제54대 손해보험협회 회장에 취임했다. 관피아(관료+마피아) 논란에도 불구하고 보험료 현실화 문제와 정보기술(IT) 혁신 등 무거운 과제를 가장 잘 수행할 '실세' 협회장에 가깝다는 기대가 반영됐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손해보험협회는 지난 13일 오후 15개사 대표가 참석하는 회원사 총회를 열고, 차기 회장 후보로 추천받은 정지원 이사장의 임기 3년 회장 선임 안건을 의결했다.
이날 진행된 회장 선임 절차는 15개 회원사 대표를 대상으로 무기명 투표를 거쳐 확정됐다. 이 투표는 회원사 3분의 2에 해당하는 10개사가 6개 이상 과반 찬성표를 얻으면 회장에 선임되는 절차다. 정 신임 회장은 이날 총회에서 업계의 압도적인 찬성표를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행정고시 27회 동기다. 게다가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과는 서울대 경제학과 동기로 알려졌다. 문재인 정부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는 '부금회(부산 출신 금융인 모임)' 핵심 멤버로 알려지기도 했다. 정 회장은 부산 대동고를 졸업했다.
중앙부처에 오래 몸담아 다양한 경험과 금융당국 등에 인맥도 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재무부(현 기획재정부)와 재정경제원을 거쳐 금융감독위원회 은행감독과장·감독정책과장,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상임위원, 한국증권금융 사장 등을 역임했다. 최근까지는 거래소 이사장을 맡았다.
업계는 정·재계 인맥을 가진 '실세' 회장을 반기는 분위기다. 보험료 현실화와 규제 완화, 의료계와 갈등을 비롯한 과제가 산적하다는 이유다.
우선 최근 자동차보험 손해율 상승세가 잠시 둔화했지만, 여전히 매년 정부와 보험사가 손해율 악화에 따른 보험료 현실화 문제를 놓고 갈등을 지속하고 있다. 실손보험 역시 과도한 손해율로 최근 상품구조 개편방안을 논의 중이다. 보험설계사 등 특수형태종사자(특수고용직) 노동3권 보장도 현안으로 꼽힌다.
급변하는 시장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규제 완화도 시급한 과제다.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험회사들이 모바일 청약 시스템과 설계사 전자청약 등 언택트 환경을 구축하고 있지만, 실제 영업을 완료하기 위해선 자필서명을 받아야 하는 등 제약이 크다. 게다가 데이터 3법이 통과되고 가명정보 활용을 위한 가이드라인까지 나왔지만 보험사의 의료데이터 활용과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 등을 반대하는 의료계와 갈등도 풀어야 할 숙제다.
업계 고위 관계자는 “일각에선 관피아 논란이 있지만, 관료 출신인 김용덕 현 회장이 업계 숙원 과제와 새 먹거리 창출에 기여하는 등 현안 해결을 위해 상당한 역할을 했다”면서 “새로 취임하는 회장 역시 중앙부처를 거친 경험과 인맥을 가졌다는 점에서 정부와 금융당국에 업계가 겪는 어려움을 제대로 전달해주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회장의 공식 취임은 12월 중순으로 예정됐다. 앞서 정 회장이 근무한 거래소가 공직유관단체로 분류돼 18일 예정된 공직자윤리위원회 취업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박윤호기자 yun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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