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미국이 정밀의료계획 추진을 발표한 이후 세계 각국은 정밀의료 실현을 위한 정책·경제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정밀의료란 과거 개인 맞춤형 의료 개념에서 좀 더 확장된 것으로 개인의 유전정보와 IT 기반 다양한 외부환경요인 정보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최적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개념이다. 질병에 대한 유전적인 요인 뿐 아니라 환자의 특성까지 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정밀하게 파악해 치료효과를 극대화하는 것이다.
전 세계적인 고령화 추세로 건강에 대한 관심증가는 양질의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 증가로 이어지고 있고, 이에 발맞춰 각국은 정밀의료산업화를 주요 정책으로 삼고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국내에서도 2016년 국가과학기술전략회의에서 정밀의료를 9대 국가과학기술 전략프로젝트 중 하나로 선정했고, 특히 2019년에는 100만 명의 국가 바이오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대한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정밀의료 구현을 위한 노력 대부분은 치료제 개발에 집중되고 있어 약물치료에 대한 부작용 부분은 다소 간과되는 것이 사실이다. 기존 약물처방은 '원 사이즈 핏 올(One-size-fit-all)' 전략으로 개인별, 집단별 혹은 인종별 특징에 따른 유전적인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적용돼 왔다. 하지만 같은 약물을 똑같은 용량으로 처방해도 개인의 유전적 차이로 사람마다 그 치료효과가 다르며, 약물 부작용 또한 차이를 보인다.
2005년 캐나다에서 발생한 진통제 '코데인'에 의한 젖먹이 신생아 사망사건은 맞춤형 독성평가기술 개발 필요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기침약 성분으로 널리 사용되는 코데인은 복용하면 체내에서 모르핀으로 대사되며, 대사속도나 모르핀 생성양은 유전적 요인에 따라 차이가 있다. 사망한 신생아 산모는 코데인 성분을 매우 빠르게 대사하는 유전 특성으로 소량의 코데인 복용에도 급격하게 모르핀 혈중농도 및 모유 중 농도가 증가하는 특징을 보였다. 해당 산모에게서 과량으로 생성된 모르핀은 모유수유로 신생아에게 전달됐고, 안타깝게도 신생아는 사망하게 됐다.
통상 신약개발과정에서 실험동물과 사람을 대상으로 안전성이 검증된 약물들만 허가를 거쳐 시장에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해마다 수백만의 환자들이 약물로 인한 부작용을 호소하고 있을 만큼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해마다 입원치료를 받은 환자 중 200만명 이상이 심각한 약물부작용을 경험했으며, 놀랍게도 이중 10만명 이상 환자들이 약물부작용으로 사망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약물부작용은 낮은 빈도이긴 하지만 특정 집단 혹은 개인들에게 사망에 이를 정도의 치명적인 약물부작용을 유발함으로써 퇴출되기도 한다. 특히 개인 혹은 소수집단에 특이적인 약물부작용은 아주 미미한 유전적 차이에서도 유발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발견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32억 쌍의 거대한 염기서열로 이루어진 사람의 DNA중 단 하나 염기서열 차이가 미칠 수 있는 약물부작용의 형태와 정도를 예측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사실상 불가능한 영역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이런 불가능한 영역에 대한 도전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데, 최근 유전체 정보 빅데이터 구축과 인공지능(AI)을 활용한 분석기술 발전은 개인 간 미미한 유전정보에 따른 약물반응 차이를 예측할 수 있는 수준까지 발전하고 있다. 특히 2012년 노벨상 수상자인 신야 야마나카 교수가 개발한 인간 유도만능줄기세포는 인체를 이루는 모든 세포로 분화가 가능하기 때문에 유전정보에 따른 개인 간 약물반응 차이를 평가할 수 있는 최적의 대안으로 제안되고 있다. 이에 안전성평가연구소에서는 빅데이터 기반 약물반응 예측 모델과 유도만능줄기세포 유래 오가노이드 모델 개발을 통해 한국인에서 흔히 발견되는 유전형질에 따른 개인-특이적 약물부작용 평가 시스템을 구축을 준비 중에 있다.
인간 개인의 다양성을 반영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의료기술들이 속속 개발되고 있고, 이에 따른 정책적·제도적 지원은 물론 이를 위한 빅데이터 등 기반 인프라 구축 또한 가속화되고 있다. 하지만 약물의 독성과 부작용 분야는 다소 간과되고 있는 것이 현재까지 현실이기도 하다. 이런 개인별 약물부작용의 예측 및 감소가 동시에 고려되지 않는다면, 정밀의료로의 패러다임 전환은 쉽지 않을 것임이 틀림이 없다. 부작용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의료서비스는 상용화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전제 때문이다.
박한진 안전성평가연구소 예측독성연구본부장 hjpark@kitox.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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