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드라마 '스타트업'처럼

한 스타트업 최고경영자(CEO)와 최고기술책임자(CTO)가 결혼했다. 한때 회사 지분을 놓고 갈등을 빚기도 하던 사이다. CEO는 어느 날 갑자기 영입된 고졸 출신이다. 이 회사는 벤처캐피털과 대기업으로부터 투자 유치 제의를 끊임없이 받고 있다.

현실 사례는 아니다. 최근 종영한 드라마 '스타트업'의 등장인물 이야기다.

방영 안팎으로 업계에서는 드라마의 현실성을 두고 여러 말이 터져 나왔다. 현실성이 지나치게 부족하고, 스타트업의 어려움을 잘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목소리다. 화려한 주인공의 외모와 패션은 물론 내부 사정이 복잡한 기업이 사업화에 이르고 투자까지 성공하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지적까지 다양했다.

이 드라마를 후원한 창업진흥원은 스타트업과 창업이라는 주제가 뉴스 아닌 드라마에서 다뤄지기 시작한 점을 좋게 보고 있다. 다소 과장됐다 하더라도 창업 생태계 모습을 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데모데이, 벤처캐피털 조언 등 스타트업의 생태계 현실을 잘 드러냈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등장인물 대부분은 자신감이 넘친다. 임직원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프로젝트에 도전한다. 벤처캐피털 심사역은 최고급 차를 타고 독설을 서슴지 않지만 오히려 드라마 속 최고 인기 인물로 주목받았다. 드라마 방영 전까지만 해도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고 있던 조카가 자신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말하는 심사역까지 있을 정도다.

창업·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점차 커지는 것은 분명 긍정적인 일이다. 업계 안팎에서는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로 업무 환경이 기존 대·중소기업과 크게 다를 것이라는 점을 꼽고 있다.

많은 구직자가 이제는 부품처럼 취급되는 '미생' 같은 삶보다는 스타트업의 에너지 넘치는 삶을 꿈꾼다. 지방 제조 공장에서 박봉으로 2교대 근무를 하길 원하는 청년 구직자는 이제 거의 없다.

주52시간 근무제 전면 도입으로 근로 환경이 변화하고 있다. 스타트업에 쏠리는 관심은 환영할 일이다. 다만 스타트업의 실상은 드라마와 큰 차이가 있다. 정부, 업계, 사회 모두가 중소기업 인력 정책과 근무 여건에 대한 고민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기자수첩]드라마 '스타트업'처럼

유근일기자 ryuryu@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