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병원의 과잉 진료와 가입자의 의료 쇼핑으로 선의의 가입자가 피해를 입고 보험사 적자누적이 심화하자 금융당국이 실손의료보험 체계를 전면 손질한다. 내년 7월부터 이용한 만큼만 실손보험료를 내는 '4세대 실손보험' 상품을 출시한다.
금융위원회는 실손보험료 상승 주 원인인 비급여를 특약으로 분리하고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한 4세대 실손보험을 내년 7월 출시한다고 9일 밝혔다. 비급여 의료 이용량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적용하기 때문에 기존 실손보험 가입자는 자신의 건강상태와 의료이용 성향을 고려해 전환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현재 실손보험은 의료 이용량 상위 10%가 전체 보험금의 56.8%를 지급받는 실정이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인당 지급보험금은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연평균 14.7% 증가했다. 전체 지급보험금은 연평균 17.7% 상승해 개인의 실손보험료 부담 증가로 이어졌다.
실손보험 적자가 매년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보험사는 해당 상품 판매를 중지하거나 가입심사 문턱을 높이고 있다. 2018년 실손보험 적자는 1조2000억원에서 2019년 2조5000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 코로나19 영향으로 의료 서비스 이용이 줄었지만 실손보험에서 상반기에만 1조3000억원 적자가 발생했다. 실손보험 판매 30개사 중 지난해까지 판매를 중단한 곳은 모두 11개사다.
금융위는 보험료 상승 주 원인인 비급여를 특약으로 분리하고 보험료 차등제를 도입키로 했다. 현재 급여와 비급여를 모두 포함한 포괄적 보장구조인데 이를 급여·비급여로 분리하고 각각의 손해율을 산정해 보험료 인상 요인을 명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바꿨다.
비급여는 실손보험 전체 지급보험금 중 65%를 차지한다. 다만 국민건강보험법상 암질환, 희귀난치성질환자 등 산정특례 대상자, 치매·뇌혈관성 질환 등 노인장기요양보험법상 장기요양대상자 중 1~2등급 판정자는 보험료 차등제 대상에서 제외한다.
권대영 금융위원회 금융산업국장은 “도수치료 등 비급여 서비스는 급여보다 의료관리체계가 미흡해 일부 가입자 비급여 의료 이용량이 전체 가입자의 보험료 인상으로 이어지는 형평성 문제가 심각하다”며 “비급여 의료 이용량이 적은 등급을 1등급, 비급여 이용량이 가장 많은 등급을 5등급으로 산정하고 새로운 상품 출시 후 3년이 경과한 시점부터 등급에 따른 할인·할증을 적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금융위가 40세 남성 기준으로 1~5등급을 적용해 시뮬레이션한 결과 전체 실손보험 가입자 대다수가 5%가량 보험료를 할인받고 1.8%만 할증 대상으로 나타났다.
보험료는 대폭 낮아지지만 보장범위와 한도는 기존과 유사하다. 4세대 실손보험은 질병·상해로 인한 입원과 통원의 연간 보장한도를 기존과 유사하게 1억원 수준(급여 5000만원, 비급여 5000만원)으로 책정됐다.
다만 적정한 의료 서비스 제공·이용을 위해 자기부담금 수준은 급여와 비급여 모두 약 10% 인상된다. 통원 공제금액은 급여와 비급여를 통합해 기존 외래 1만~2만원, 처방 8000원에서 급여는 1만원(상급·종합병원은 2만원), 비급여는 3만원으로 분리해 인상된다.
이에 따라 2017년 출시된 3세대 실손 대비 약 10%, 2009년 이후 실손 대비 약 50%, 표준화 전 실손 대비 70%가량 보험료가 인하된다.
금융위는 장기적으로 보험사 위험손해율 안정에도 기여할 것으로 봤다. 지난해 기준 2009년 이후 표준화된 실손보험 위험손해율은 135%, 3세대 실손은 100%였다.
이 외에 4세대 실손은 재가입주기를 15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고 동일 보험사 실손보험에 재가입시 과거 사고이력 등을 이유로 계약 인수를 거절하지 못하도록 했다. 보험금 지급 이력은 1년마다 초기화된다.
권 국장은 “상품개편과 동시에 보건복지부가 추진하는 비급여 의료관리 강화가 함께 추진된다면 점차 제도가 합리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며 “여기에 더해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까지 함께 이뤄진다면 실손보험이 가진 다양한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표. 새로운 실손보험과 기존 실손과의 40세(남자) 기준 보험료 비교 예시 (자료=금융위원회)
배옥진기자 witho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