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가 고(故) 구자경 회장의 '도전과 혁신' 정신에서 새삼 위기의 시대를 헤쳐 나갈 경영지혜를 구했다. 그가 남긴 불굴의 개척정신과 인간존중경영 유산은 오늘날 LG가 세계를 선도하는 전자·화학 기업으로 우뚝 선 밑거름이 됐다.
LG는 14일 사내방송을 통해 상남(上南) 구자경 회장 별세 1주기를 추모하고 고인이 남긴 경영 유산을 공유했다.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 장남으로 1925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상남은 진주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교편을 잡던 중 가업에 참여하라는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밑바닥부터 일을 배운 '자수성가형 기업가'의 표본이다.
LG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주식회사에서 가마솥에 원료를 붓고 불을 지피거나 추운 겨울에도 판자방에서 쪽잠을 자며 혹독한 경영수업을 받은 일화가 전해진다. 이때 경험이 훗날 경영철학으로 체화한다.
상남은 1970년 LG 2대 회장 취임 이후 25년 간 한결같이 '도전과 혁신'을 강조하며 LG의 비약적 성장을 진두지휘했다. 그는 '불굴의 개척정신'과 '미래지향적 진취심' 등을 강조하며 “미래를 향해 전력을 다해 뛰는 것이 바로 기업활동”이라고 외쳤다.
평소 '강토소국 기술대국' 신념을 목숨처럼 여기던 상남은 1979년 민간연구소 1호 '럭키중앙연구소'를 설립하며 혼을 담은 기술 개발을 주문했다. 재임 기간 설립한 70여 개 연구소는 명실상부 대한민국 화학·전자 산업 중흥의 산실이었다.
이 땅에 기업문화와 경영철학 개념을 심은 것도 빼놓을 수 없는 업적이다. 락희화학과 금성사 기업공개를 단행해 투명경영을 선도하고, 전문경영인을 육성해 자율경영체제를 확립하는 등 LG가 오늘날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당시 개념조차 생소했던 '인간존중 경영'과 '고객가치 경영'을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선포하며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을 일신했다.
추모영상에서 이문호 LG공익재단 이사장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개선을 생각하신 분”이라며 “회사를 경영하면서 돈을 버는 것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의 생활을 윤택하고 잘살게 하는 방법을 늘 생각하셨다”고 회상했다.
1995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날 때와 그 이후의 삶은 더 큰 울림을 남겼다.
글로벌 무한경쟁시대에 발 빠르게 대응하기 위해서는 세대교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무고(無故) 승계(생전에 일찍 경영권을 물려주는 일)'를 택했다. 명예회장으로 물러난 뒤에는 충남 천안 농장에서 여생을 보내면서도 2015년까지 LG복지재단 이사장으로 사회공헌활동을 이어갔다.
지난 11월 25일 한국경영학회와 연세대학교 경영대학, 연세대학교 상남경영원은 공동으로 구자경 회장 1주기를 앞두고 고인의 기업가 정신을 기리는 메모리얼 워크숍을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박헌준 연세대 명예교수와 김희천 고려대 교수는 구자경 회장의 '고객 중심' '인간 존중' 경영 이념이 오늘날 LG에 미친 영향 등을 학문적으로 규명했다.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