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등장한 이래 인간은 단 한 순간도 그것을 탐닉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이제 현대인은 SNS를 통해 일상을, 뉴스를 통해 시사를, 대화를 통해 신변잡기를, 그러니까 이야기를 끊임없이 소비한다. 우리는 과거를 이야기하며 역사를 되짚고, 현재와 미래를 이야기하며 역사를 만들어간다. 언뜻 ‘주관적’인 이야기와 ‘객관적’이라고 여겨지는 역사는 이렇게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루며 서로 얽혀든다.
㈜르몽드 코리아는 계간 무크지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 겨울호 『문학, 역사를 넘보다』를 5일 출간했다. 본 잡지에는 세계의 저명한 필자 22명이 참여해, 불멸의 문학을 일궈낸 작가들과 그 작품을 집중 조명한 글들을 담았다. 잡지는 세계사의 비정한 현실 앞에서 침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과감하게 활자로 옮긴 작가들의 올곧은 문학 정신을 조명하면서, 이들이 추구했던 작품의 여정을 따라갔다.
왜 문학과 역사인가
<마니에르 드 부아르> 필자 손현주 박사는 서론에서 ‘이야기는 우리 뇌가 세상을 인지하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세상사의 인과관계를 찾고 삶의 의미를 도출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문학은 인간이 지나온 역사와 발맞추며, 인간이 이해한 시대상과 그 의미를 담아왔다. 일례로, 사람들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을 통해 60년대 체코 국민이 열망한 ‘소련으로부터의 해방’을 되돌아볼 수 있다.
문학은 지나온 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도모할 뿐 아니라, 새로 써지는 역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레닌은 톨스토이와 괴테의 작품으로부터 사회주의 혁명의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이처럼 문학은,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지는 '역사'의 자리를 넘보는 것도 같다.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 겨울호 『문학, 역사를 넘보다』는 이처럼 미묘한 긴장관계를 이루며 서로 얽혀드는 문학과 역사를 집중 조명했다.
시대정신에 맞선 ‘작가정신’
작가이자 평론가인 기 스카르페타는 프롤로그에서 “소설의 거장들은 다른 해석 체계나 표현 체계를 벗어나, 역사와 역사의 공식적인 거대 담론이 놓치는 부분에 대해 진실을 밝히는 성과를 거뒀다”며 “소설에는 작가에 의해 잊혀지는 것, 고의적인 집단 기억상실에 반대하는 글쓰기가 가능하다”고 말한다.
작가 정신은 규범을 따르는 시대정신과 다르다. 작가 정신에 충만한 이들은 당연시되는 질서의 굴레를 벗어던지고, 불온하더라도 인류가 당면한 불합리를 끊임없이 들춰내는 게 자신들의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믿는다. 많은 작가들이 상업적인 경쟁력에 내쫓기고 있지만, 고집스럽게 자신만의 촘촘한 활자로 스스로 믿는 ‘진실’의 시간과 공간을 채우는 작가들이 있기에 불멸의 문학이 만들어진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시대에 순응할 때, “노”라고 외치며 침묵을 깨는 이들 작가야말로 권력과 자본에 길들여지지 않는 반 순응주의(Non-conformism)의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번 <마니에르 드 부아르(Manière de voir)> 겨울호는 1부 침묵을 깬 작가정신, 2부 아름다운 불복종, 3부 본질을 기록한 활자들, 4부 글을 쓴다는 것의 의미로 구성되며, 사르트르, 리우 젱운, 입센, 브레이트, 쿤데라, 옹프레, 카뮈, 아라공, 레닌, 르 귄, 세익스피어, 위고, 고디머, 발자크, 괴테, 버나드 쇼, 보들레르, 오웰, 마르케스 등 시대를 고민하고 저항한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다뤘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의 발행인을 역임한 이냐시오 라모네가 남미를 대표한 노벨문학상 수상작 마르케스를 쿠바 하바나에서 한 직접 인터뷰는 마르케스의 호탕한 유머감각과 아울러 역사의 현장을 냉철하게 작품화하는 그의 작가 정신을 확인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각박한 생존의 벽 앞에서 문학에 대한 성찰이 부족한 요즘, 이번에 출간된 <마니에르 드 부아르>의 두 번째 이야기, 『문학, 역사를 넘보다』는 문학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이며, 그 역할은 무엇인가를 다시금 반추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가 될 것이다.
전자신문인터넷 구교현 기자 ky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