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파기환송심을 둘러싼 양형 논란이 징역 2년 6월의 실형으로 결론 났다. 양형에 중요한 요소로 봤던 뇌물 성격과 준법감시위원회 등 자구 노력이 이 회장에게 긍정적 요소로 작용하지 않으면서 법정 구속됐다.
◇'소극적 뇌물' 강조했지만 법원 '인정 못해'
2017년 8월 1심 판결은 승마 지원금 72억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후원금 16억원 등을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반면 2018년 2월 2심은 승마 지원금 72억원 중 용역대금 명목으로 지급된 36억원만 뇌물로 인정했다. 결국 이 부회장은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석방됐다. 그러나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이 부회장의 뇌물 금액은 1심과 비슷한 수준인 86억원으로 인정했다. 특히 이 돈이 회삿돈이라고 판단하면서 집행유예가 불가능한 5년 이상 징역형이 예상되기도 했다.
이 부회장 측은 국정농단 뇌물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서원(개명전 최순실)씨 측에 준 뇌물이 소극적·수동적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했다. 변호인단은 승마지원 계기가 2015년 7월 박 전 대통령이 이재용 부회장 단독 면담을 가지면서 강하게 질책한 점, 영재센터 지원 역시 박 대통령의 후원 요구 때문이라는 점이 근거다. 즉 86억원의 뇌물은 강압적 요구에 의한 수동적·소극적 의미의 뇌물일 뿐 개인 이익을 위한 적극적 의미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 2019년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K스포츠재단에 70억원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1, 2심 모두 유죄를 판결 받았다. 그러나 실형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박 전 대통령 측의 요구에 응답한 소극적 뇌물이라는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아 석방됐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 부회장 판결에서는 적극적이고 능동적 뇌물이었다는 특검 주장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뇌물 요구에 편승해 적극적으로 뇌물을 제공했고, 묵시적으로나마 승계 작업을 위해 대통령 권한을 사용해 달라는 취지의 부정한 청탁을 했다”고 강조했다.
◇준법감시위 활동으로 '선처' 호소…재판부 '실효성 없다'
형법 제3조는 3년 이하 징역형에만 집행유예가 가능하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판사가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다고 볼 경우 '작량감경'으로 집행유예를 선고할 수도 있다.
파기환송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합의 1부는 2019년 첫 공판에서 이 부회장에게 고 이건희 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가는 과감한 혁신, 내부 준법감시 제도 마련, 재벌 체제 폐해 시정 등 세 가지 당부를 전달했다. 이어 준법감시위 활동이 총수 관련 범죄 예방에 실효성이 있다고 평가될 경우 양형 감경사유로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나 그동안의 준법감시위 활동이 향후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효성과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고 봤다. 사실상 재판부가 양형 조건으로 제안한 방안이 기대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실형 선고에 결정적인 요인이 됨 셈이다.
재판부는 “새로운 삼성의 준법감시제도는 일상적 준법감시활동과 이 사건에서 문제 된 위법행위 유형에 따른 준법감시활동을 하고 있으나, 앞으로 발생 가능한 행동에 대한 선제적 감시활동까지는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어 “또 컨트롤타워를 운영하는 준법감시방안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있지 않았다”면서 “준법감시위와 협약을 체결한 7개 회사 외에 발생할 위법행위 감시체계가 확립되지 못했고, 제도를 보완할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재판 기간 동안 준법감시위 실효성을 두고 특검과 이 부회장 변호인 간 치열한 논쟁을 펼쳤다. 특검은 18개 준법감시위 실효성 평가 기준을 두고 전문심리위원단의 부정적 평가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또 평가 기간 역시 20여일에 불과해 제대로 된 실효성 평가가 어렵다고 강조했다. 반면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평가위원들의 긍정 평가도 존재하며, 평가 기간도 충분하다고 반박했다.
치열한 공방 속 재판부는 결국 특검의 손을 들어줬다. 총수 준법 여부를 감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지만, 선제적 감시활동과 포괄적 감시체계 부족 등으로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본 것이다.
정용철기자 jungyc@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