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보는 가족을 위한 패밀리카 브랜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차체가 큰 중대형 세단이나 실용성을 강조한 왜건,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주력 라인업인 데다 높은 안전성이 부각되면서 이런 이미지가 굳혀졌다.
그러나 역사를 되짚어보면 볼보는 역동성을 강조한 자동차를 완성도 있게 잘 만드는 브랜드다. 지난 수십 년간 젊은 세대를 위한 자동차를 꾸준히 개발해왔다. 운전의 재미를 추구하는 이들을 위해 전략적으로 개발한 스포츠 세단 S60이 대표적이다.
볼보는 1978년 갤럭시 프로젝트를 시작으로 14년간 개발 과정을 거쳐 S60의 모태인 850을 탄생시켰다. 1991년 등장한 850은 가로로 엔진을 배치한 전륜구동 모델로 날렵한 성능과 안전성을 갖췄다. 출시 후 5년간 전 세계 시장에서 136만여대가 팔리며 볼보를 대표하는 스포츠 세단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볼보의 새 모델명 체계에 따라 850은 1996년 S70, 2000년 S60 1세대, 2010년 S60 2세대로 진화했다. 세대마다 혁신적 기술을 선보이며 2019년 현행 3세대가 탄생했다. 3세대 S60은 SPA 플랫폼을 기반으로 차급을 뛰어넘는 성능과 안전·편의 장비를 조합해 국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한 수입 중형 세단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이번에 시승한 차량은 3세대 S60의 최신 버전인 S60 B5이다. 기존 S60을 기반으로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 기술을 적용한 볼보의 새 표준 파워트레인 B 엔진을 탑재했다. 연료 효율과 배출가스 저감 등 친환경성을 추구하며 역동성까지 겸비한 것이 특징이다.
가장 큰 변화는 파워트레인이다. B5 가솔린 마일드 하이브리드 엔진은 첨단 운동 에너지 회수 시스템과 2.0ℓ 가솔린 엔진을 결합한 통합형 전동화 엔진이다. 최고출력은 5700rpm에서 250마력, 최대토크 1800rpm부터 4800rpm까지 35.7㎏·m를 발휘한다. 48V 배터리는 출발과 가속, 재시동 시 엔진 출력을 보조하는 방식으로 14마력의 추가 출력을 지원한다.
힘은 부족함이 없다. 직선 구간에서 시원스러운 가속력을 보여주며, 넓은 엔진 회전 영역에서 최대토크를 뿜어내 언덕에서도 지친 기색이 없이 꾸준한 힘을 전달한다. 엔진과 맞물린 변속기는 8단 자동 기어트로닉이다. 부드럽고 민첩한 변속 반응이 돋보인다. 수동 조작을 지원하는 패들 시프트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정숙성은 정차나 주행 시 모두 럭셔리 세단 못지않게 조용하다.
차체 움직임은 지금껏 시승한 볼보 라인업 가운데 가장 날렵한 설정이다. 충분한 힘과 충실한 기본기 덕분에 전륜구동 모델임에도 사륜구동 모델처럼 안정감과 운전의 재미가 높다. 묵직한 운전대는 돌리는 만큼 정교하게 차체를 움직인다. 서스펜션은 전륜 더블위시본, 후륜 멀티링크를 장착했다. 단단한 감각의 서스펜션은 곡선 구간에서 차량을 안정적으로 받쳐준다.
주행 모드는 4가지로 운전자 성향에 따라 차량 설정을 바꿀 수 있다. 일상 주행에서는 컴포트, 연료 효율을 높이려면 에코를 설정하면 되는데, 실제 주행에서 크게 체감되진 않는다. 대신 다이내믹으로 바꾸면 엔진 회전 영역을 더 높게 사용해 확연히 가속이 빨라진다. 운전자가 스스로 주행 환경을 설정하는 인디비주얼 모드도 고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차라도 장시간 주행하면 피로가 몰려온다. 꽉 막힌 도심에서 S60은 지능형 안전 시스템 인텔리세이프를 통해 운전자 피로감을 대폭 줄여준다. 운전대 버튼을 눌러 파일럿 어시스트II를 활성화하면 최대 140㎞/h까지 설정된 속도로 앞차와의 간격을 조절하고 조향도 보조한다. 시티 세이프티는 조향 기능을 추가해 진화했다. 레이더와 카메라가 도로 위 차량과 자전거, 보행자, 큰 동물을 식별하고 자동 제동 기능으로 충돌을 피하거나 완화할 수 있다.
실제 시승 시 정체가 극심한 서울 내부순환로 30㎞/h 이하 직선 구간에서 5분 이상 자율주행이 가능했다. 여기에 도로 이탈 완화 기능, 반대 차선 접근 차량 충돌 회피 기능, 사각지대 정보 시스템, 액티브 하이빔 컨트롤 등 안전 기술을 기본으로 갖췄다.
차량에서 음악을 듣는 것도 운전자에게 즐거움을 주는 요소다. 시승차는 상위 트림 인스크립션으로 영국 하이엔드 스피커 바워스 앤 윌킨스를 장착했다. 작은 볼륨으로 잡음 없이 웅장하고 깨끗한 음색을 즐길 수 있었다. 기계적 공진 상태를 완벽에 가깝게 구현하는 새 컨티뉴엄 콘을 탑재해 전 좌석에 풍부하고 세밀한 음질을 제공한다.
이틀간 도심과 고속도로 등 200㎞ 시승 후 계기판으로 확인한 연비는 12㎞/ℓ를 기록했다. 도심에선 10㎞/ℓ, 고속도로 정속 주행 시 14㎞/ℓ 정도를 주행할 수 있었다. 공인 복합연비는 11.6㎞/ℓ다. 가격은 모멘텀 4810만원, 인스크립션 5410만원이다. 5년 10만㎞ 보증기간과 주요 소모품을 지원한다. 수입 중형 세단치곤 가격 경쟁력도 높은 편이다.
정치연기자 chiye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