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세계적 전환기를 돌이켜볼 때 현재는 국가 수준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위기이자 기회의 시간입니다. 국가 미래의 혁신 엔진인 창의적 인재양성과 원천기술 확보에 있어 대학 산학협력과 연구 기능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이 보다 중요해졌습니다.”
김철현 단국대 교수가 제25대 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장(이하 산단장협의회)으로 취임, 새해부터 본격적 활동을 시작했다. 1997년 설립한 산단장협의회는 대학과 국가 및 유관 연구기관의 교류 협력을 강화해 산학협력을 촉진하고 제도 개선 및 정책을 건의한다.
대학 동록금의 유례없는 장기 동결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의 가속화로 대학 산학협력단 역할이 보다 중요해졌다. 대학과 산업이 힘을 합쳐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기술 개발에 머리를 맞대야 한다.
김 협의회장은 “지금까지 실용화하지 않는 연구는 해본 적이 없다”면서 산학협력과 실용연구의 철학을 밝혔다. 그는 “과거 대학과 산업 현장과는 다소간 괴리가 있었지만, 교육부의 산학협력선도대학육성사업(LINC·링크) 덕분에 대학 내 산학협력에 대한 인식이 많이 좋아졌다”면서 대학과 기업이 기존 산학협력 수준을 넘어 시공간 제한이 없는 산학공생 프로그램을 함께 해야하는 시기라고 강조했다.
김 협의회장은 “산학협력이 지난 10년 동안 비약적 발전을 했으나 지속적 혁신이 필요하다”면서 앞으로 협의회 활동을 통해 대학, 지역, 국가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밝혔다.
대담=이호준 ICT융합부장
-올해 산단장협의회 주요 사업으로 추진할 일은 무엇인가.
▲1990년대 대학 중심 산학협력으로 시작해 2000년대에 이르러 지방대학혁신역량강화사업(NURI), 링크, 후속사업인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LINC+, 링크플러스) 등을 통해 국가와 산업계, 대학 구성원에게 산학협력에 대한 인식과 중요성이 크게 제고됐다. 국가적으로도 대기업과 수도권 중심에서 창의적 기업과 지역통합 지향 경제구조 변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산학협력을 통해 대학재정과 산업발전을 이루는 선순환시스템이 미흡하다. 2018년 전국 4년제 대학 기술이전료가 총 702억으로 미국 한 대학의 생명과학 분야 4개 지식재산권 수입인 1560억(2014년 기준)에도 못 미치는 현실을 보더라도 아직 부족하다.
국가적 차원에서 산학연협력시스템 고도화가 필요하다. 협의회는 기술사업화와 창업을 중심으로 전국 대학 자원이 지역과 산업계에 유기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 연령대별 인구 및 소득분포, 지역 핵심 산업과 수준별 기업분포, 혁신자원 등과 각 부처별 공공기술 데이터베이스(DB)가 연결된 '지역-산업-대학-연구기관 산학연협력 매핑' 등 국가적 차원의 산학연협력 인프라 셋업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앞으로는 산학협력단이 대학 내 산학협력 전 분야의 총괄기획과 조정자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 내 분산된 학내연구소 지원 기능과 대학기술이전전담조직(TLO), 기술지주회사, 창업보육, 대학창의적자산실용화지원사업(BRIDGE·브릿지), 창업선도대학 등 기술사업화와 창업 관련 사업의 통합 의사결정 체계가 확립돼야 진정성, 효율성, 속도가 동반된 산학협력이 가능하다. 일반 행정 보직교수와 같은 1~2년의 통상적 임기로는 기업과 정부와 지역에 맞추기가 어렵다. 따라서 산학협력단장의 교내 위상 재정립이 반드시 요구된다.
담당 직원 역시 다른 대학내 행정기구에 비해 전문성이 더욱 강조될 수 밖에 없는 산학협력단 업무특성에 적합한 직원 관리체계 개선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협의회가 앞장서겠다.
나아가 기술사업화와 창업 활성화를 위해 직무발명보상금 관련 소득세법, 국가연구개발혁신법, 의료기술협력단 관련 보건의료기술진흥법, 학생연구원 관련 법률 등을 정부가 제도 보완하거나 개선할 수 있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인공지능(AI), 바이오, 미래차 등 신기술 등장으로 대학 연구개발(R&D) 환경이나 산학협력에도 변화가 있는가.
▲각 대학과 산업계에서 AI 관련 전문가를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한다. 기술발전과 산업화 속도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시대에 산업계가 필요한 인력공급 측면에서 시급성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대학은 앞으로 시대의 중심 역할을 하는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 기존 교육방식과 속도로는 이를 충족시키기 힘들다. 대학의 전통적 역할은 '미네르바대학' '코세라'나 '에덱스' 등과 같은 시공간의 제약을 넘어선 에듀테크와 공존하거나 경쟁해야 한다.
AI, 바이오, 미래차 등도 대학, 공공연구기관, 기업 간 연구와 산업화 속도가 주요 경쟁력이 됐다. 정부도 실현 가능성과 속도를 중심으로 하는 산학연협력 고도화에 행·재정적으로 지원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은 비록 투자 리스크가 클지라도 성공 시 경제적 파급효과가 매우 큰 원천기술 상용화를 연방정부에서 직접 지원한다. I-Corps(혁신군단) 창업프로그램에 전국 8개 권역의 78개 이상의 대학이 NSF(National Science Foundation·미국립과학재단) 주도로 함께 참여하는 창업생태계를 통해 체계적인 창업 지원을 하고 있다. 대학과 국가경제의 현실적 차이가 있지만, 산학협력 생태계를 어떻게 조성했는냐에 주목해야 한다.
-대학 산학협력 활동은 어떻게 발전해야 하는가.
▲우리나라 산학연협력의 숙제는 지능(Intelligence), 혁신(Innovation), 소통(Interaction), 통합(Inclusiveness)을 통한 4차 산업혁명과 한국형 뉴딜 정책 대응이다. 관련 분야는 AI, 바이오, 자율주행자동차, 신재생에너지 등 다양하다.
과학기술 연계산업은 앞으로 융합기술 확보 스피드와 효율성이 핵심이다. 이는 결코 하나의 기관이 독자적으로 성취할 수 없다. 소통, 협업, 융합은 AI를 중심으로 함께 연결될 것이다.
결국 산학연과 혁신 네트워크는 간격이 없는 하나의 유기체로 협업해야 한다. 속도와 실현가능성 확보가 중요하다.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지역, 연구기관, 기업이 함께 모여 유기적 협업을 통해 인재양성, 연구개발과 산업화가 이뤄지는 생태계 확보가 곧 경쟁력이다.
미국 서부의 실리콘밸리, 동부의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RTP), 핀란드 오울루테크노파크, 이스라엘의 키리아트 와이즈만 혁신클러스터 등 사례가 대표적이다. 대학과 기업, 지역과 함께 지역 역량에 적합한 신산업모델을 만들어가느냐가 곧 국가 산업경쟁력이 된다.
특히 독일의 아헨공대와 아디다스가 정부 지원을 받아 지역의 20여개 이상 기업이 공장시스템 구축에 참여해 획기적 공정개선을 이룬 '스피드 팩토리 사업'이 우리에게도 좋은 모델이다.
정부도 정책사업을 통해 대학의 공간에 기업과 연구기관이 함께 하는 지역 중심 협업체계를 만드는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를 활성화 하는데 지역의 각 대학들이 기여할 수 있도록 협의회 차원에서 고민하고 있다.
-대학 산학연협력 활성화를 위해 시급히 개선해야 할 규제는 무엇인가.
▲제도적 뒷받침 없이 산학연협력 활성화는 결국 한계에 직면한다. 직무발명보상금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 2016년 12월 당시 정부는 전문가를 통한 사전 의견수렴이나 관련 법률 검토 없이 '기술이전에 따른 직무발명보상금'을 '근로소득'으로 소득세법을 개정했다. 대학과 공공연구기관을 통한 기술사업화 활성화를 저해하는 대표적 사례다.
이는 작년 12월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에서 발표한 핵심 4대 전략목표로 설정한 '기술사업화를 통한 고부가가치 창출'과 '창업 활성화를 위한 지원체계 구축'을 위축시키는 일이다. 법률적으로도 적합하지 않은 직무 관련 보상금 소득세법의 개정이 우선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최근 정부에서 추진 중인 '대학연구실 안전관리 및 산재보험'과 관련 학생연구원과 연구원의 법적 지위문제에 관해서도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학생연구원 법령 제안 취지를 살리되 국가 근간이 되는 교육기관으로서 정체성과 대학재정 건전성 확보가 우선되는 법령개정이 필요하다.
-지난해 코로나19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산학협력에서도 성과가 많았다.
▲2018년 출범한 국가산학연협력위원회가 지난해 12월 창의적 인재양성, 기술이전 사업화, 창업, 지역별 산학연협력 연계를 강화한 생태계 조성 등 4대 전략을 중심으로 하는 제1차 '산업교육 및 산학연협력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국가 역량을 통합한 산학연협력이라는 대전제를 정부가 함께 공감하고 실행하겠다는 정책의 큰 방향을 잡은 것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국가 산학연협력 활성화를 위해 헌신적으로 노력한 많은 산학협력단장님과 함께 기뻐한 성과였다.
산학협력 성과도 다양하게 나왔다. 네오펙트의 '스마트재활글러브'는 최용근 단국대 교수의 연구결과로 시작된 AI 기반 디지털 재활 신기술이다. 국내외 병원에서 뇌졸중 재활훈련에 활용하고 있다. 대학 인프라를 활용해 제품개발 및 양산비용을 최소화하고 제품화 프로세스를 단축했고, 교내창업 8년 만에 코스닥에 상장했다. 주식 기부를 통해 대학의 연구재정 확보와 학생 취업 등에 도움을 줬다.
젠바디는 대학 창업보육센터 입주 후 대학의 기초과학과 임상 인프라를 활용해 항체 진단 키트 기술 확보에 성공했다. 세계 최초 지카바이러스 진단 키트를 개발해 3000만달러 해외 수출을 시작으로 작년에는 코로나19 진단키트를 팬데믹 초기에 개발해 해외에 수출했다. 마찬가지로 주식기부를 통해 대학 연구재정 확보와 학생취업 등 도움을 준 산학협력모델이다.
-앞으로 대학 산학협력은 어떻게 가야 하나.
▲국가산업의 미래와 마찬가지로 대학도 교육과 연구 모든 분야에서 기존의 사고를 깨고 사회 변혁과 함께 해야만 하는 시대다.
지역과 대학과 산업이 공동운명체가 된 것이다. 대학이 지역 및 기업과 함께 교육-연구-상용화를 하나의 유기체처럼 공생할 수 있는 산학협력 생태계가 정착돼야 한다.
독일의 스피드 팩토리 사례처럼 지역 내 대학, 연구기관과 20여개 이상 기업이 공장시스템 구축에 참여해 획기적 공정개선을 이룬 모델을 찾아 자립화를 지향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학생 취업뿐만 아니라 기술사업화와 창업이 연결되고, 각 대학의 재정확보와 지역발전을 함께 성취해나가야 한다.
대학은 지자체와 기업이 대학을 찾을 수 있도록 학사구조, 교원평가체계, 공간관리체계 등을 선제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생태계 총괄기획과 조정자로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산학협력단 위상재정립이 필요하다고 다시금 강조하고 싶다.
정부는 각종 제도를 산학협력 친화적으로 신속히 보완·신설해서 산학협력 생태계가 제대로 작동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 진정성과 속도가 급변하는 미래의 대학과 지역 뿐만아니라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척도가 될 것이다.
○김철현 전국대학교 산학협력단장·연구처장협의회장은
단국대 동물자원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대학원 농생명과학부에서 유과학 및 미생물학을 전공, 농학박사를 받았다. 서울우유협동조합 중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약 13년을 재직, 낙농화학과 미생물 기초연구, 우유 유래 신소재 및 유산균 관련 다양한 연구를 진행했다. 2007년 단국대에 부임해 산업계 연구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서 실용연구와 산학협력에 앞장섰다. 단국대 취업진로부처장, 단국대 교무부처장 등을 역임했다. 2010년 산학연 우수연구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상, 2015년 산학연 우수연구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016년 7월부터 단국대 천안캠퍼스 산학협력단장을 맡고, 지난해 제24대 산단장협의회 수석부회장으로 활동했다. 1월 1일 협의회장에 취임, 오는 12월 31일까지 1년을 이끈다.
정리=김명희기자 noprint@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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