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26년 독일 물리학자 게오르크 옴은 전압, 전류, 저항 간 관계를 설명하는 '옴 법칙'을 발견했다. 전기회로의 기본이 되는 옴 법칙은 전압이 강할수록 전자가 금속 내 불순물의 방해, 즉 저항을 이겨내고 더 잘 흘러가는 현상을 설명한다. 이 법칙은 190년 동안 한 번도 깨진 적이 없었다. 그러나 지난 2017년 포스텍 연구팀이 바일(BiSb) 금속에는 옴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바일 금속은 전압을 걸면 내부에 전자가 이동하는 통로가 만들어지고, 전자는 이 통로로 불순물에 부딪히지 않고 이동한다. 즉 전압, 전류, 저항 등 세 요소를 기반으로 성립하는 옴 법칙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외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을 뿐 옴 법칙에 위배되는 예외의 금속이 자연계에는 존재할 수 있다는 의미다.
과학은 언제나 새로운 법칙을 발견하고, 또 수정하고, 때로는 법칙을 아예 뒤집으며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이 때문에 많은 사람이 과학이라는 단어에서 혁신이라는 단어를 함께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비단 과학뿐만이 아니다. 사회 전반이 무척 쉽게 혁신을 말한다. 특히 새해 초가 되면 쇄신, 혁신, 개혁이라는 단어들이 미디어를 빼곡하게 채운다. 새해 새마음으로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가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고, 그 의지는 사회 발전에 필수 요소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혁신이라는 말을 오해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과거를 고수하는 것은 고루하거나 잘못됐으며,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거나 일신(一新)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가치라고 인식한다. 세대 간, 계층 간, 지역 간 갈등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과거를 버리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하겠다는 과격함 때문이라 할 수도 있다.
이는 혁신이라는 말의 어원 때문인지도 모른다. 혁신은 가죽 혁(革)과 새 신(新)의 합성 한자어로, 갓 벗겨낸 가죽(皮)을 무두질해서 새로운 가죽(革)을 만들어 낸다는 어원에서 비롯됐다.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한다는 뜻의 이 말은 언뜻 봐서는 과거를 쇄신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이 때문에 혁신은 새롭게 되도록 갈아엎거나 과거의 흔적을 완전히 지우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애플이나 삼성이 새로운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도 기존의 스마트폰과 비교해서 큰 차이가 느끼지 않으면 “혁신이 아니다”는 비판을 듣는다. 그 면면을 살펴보면 메모리 효율이 높아져서 처리 속도가 빨라졌거나 배터리 용량이 조금 더 커져서 사용시간이 늘어나는 등 미묘한 변화가 있고, 이어폰 단자를 없애고 패키지에서 충전기를 제외하는 등 불필요하거나 환경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점을 과감하게 없앤 부분을 찾아볼 수 있다. 즉 큰 틀은 고수하더라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을 개선하고, 다소의 비판이나 불만을 감안하고라도 없앨 것을 없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스마트폰의 이어폰 단자가 사라지면서 블루투스를 기반으로 하는 무선 이어폰과 헤드폰 시장이 급격히 커졌다. 충전기를 제외하기로 한 결정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새로운 시장 창출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이처럼 혁신이란 기존에 있던 것들을 싹 갈아엎는 것이 아니다. 지켜야 할 원칙을 지키되 없애야 할 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없애는 것이 혁신이라 할 수 있다. 한마디로 혁신이 과거에 존재하던 모든 것의 종말을 반드시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지켜야 할 것은 계속 발전시키되 잘못된 것을 찾아내 바로잡고 부족한 점을 확인해서 과감하게 개선하는 것이 혁신의 뜻이며, 이를 제대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혁신의 지혜가 아닐까.
이런 의미에서 오늘도 혁신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미국 신학자이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부어의 기도문 한 구절을 전하고 싶다.
“우리가 변화시키면 안 되는 것을 유지할 수 있는 침착함을 주시고,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것은 바꿀 수 있는 용기를 주시고, 바꾸지 말아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를 주시옵소서.”
김무환 포스텍 총장 mhkim8@postech.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