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가시광선을 투과시키는 투명한 비정질 실리콘을 발견했다. 가상·증강현실 이미지를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헤드마운트 디스플레이(HMD)도 종잇장처럼 얇은 안경렌즈로 볼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포스텍(총장 김무환)은 노준석 기계공학과·화학공학과 교수, 기계공학과 통합과정 양영환 씨, 윤관호 박사 연구팀이 디스플레이업체에서 많이 쓰고 있는 플라즈마화학기상증착방식(PECVD)을 개량해 가시광에서 투명한 비정질 실리콘을 개발했다고 7일 밝혔다. 또 개발된 투명한 비정질 실리콘을 통해 가시광 영역의 빛을 높은 효율로 조절하는 데 성공했다.
빛은 굴절률이 높을수록 많이 휘기 때문에 가상증강현실을 위한 디바이스를 설계할 때는 굴절률이 높은 물질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고굴절률 물질은 빛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초박막렌즈나 홀로그램과 같이 빛을 조절해서 이미지를 만드는 디바이스에 사용하면 성능이 떨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지금까지 제시된 광학 소재들은 낮은 굴절률로 높은 투과율을 지니거나, 그 반대로 높은 굴절률에 낮은 투과율을 지니고 있어서 가볍고 효율이 높은 광학 디바이스를 만드는데 한계점이 있었다.
연구팀은 투명한 비정질 실리콘을 개발하기 위해 흔히 사용되고 있는 PECVD방식을 활용했다. PECVD로 실리콘을 증착하는 과정 중에서 온도, 압력, 플라즈마 세기, 수소비율 등 다양한 변수들을 하나씩 탐구했다. 그 결과 각 변수가 분자 간의 결합에 미치는 영향을 밝혀냈다.
또 불완전한 실리콘 원자결합 사이에 수소 원자를 삽입해 실리콘 원자간 규칙성을 높이는 방법을 찾아내고, 이를 통해 높은 굴절률을 지니면서도 상당한 투과율을 지니는 비정질 실리콘 원자구조를 밝혔다. 뿐만 아니라 기존에 실리콘으로 조절할 수 없었던 빨강, 초록, 파랑색의 빛을 원하는 방향으로 회절시키는 데 성공했다.
투명한 비정질 실리콘은 기존 렌즈의 1000분의 1수준인 초박막렌즈나 홀로그램 디바이스를 값싼 가격으로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열적외선 카메라 등에서만 이용되던 비정질 실리콘을 가시광 영역에서 광소자로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실리콘의 사용 범위도 넓혔다.
노준석 교수는 “눈에 보이는 모든 빛을 제어할 수 있는 광학 소자의 발견”이라면서 “지금껏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원자결합구조와 가시광영역의 연관성에 대한 실마리를 풀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모든 색을 조절할 수 있는 광소자를 값싼 가격에 생산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영화에서만 보던 가상·증강현실, 홀로그램 기술의 상용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했다.
삼성미래기술육성사업, 과기부 중견연구자지원사업, 과기부 글로벌프론티어사업, 과기부 RLRC선도연구센터사업, 과기부 미래소재디스커버리사업, 현대차정몽구장학금, 한국연구재단 학문후속세대 양성사업의 지원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최근 재료 분야 최상위 국제학술지 '어드밴스드 머터리얼즈(Advanced Materials)'에 게재됐다.
포항=정재훈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