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선업 이사회 등을 통해 우리 정부의 조선업 지원 정책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하고 나섰다. 그동안 일본은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을 문제 삼으며 이 같은 논리를 내세워왔다. 양사 합병 심사를 순순히 승인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다만 현대중공업그룹은 관련 사안을 일본 측에 충실히 설명, 설득한다는 방침이다.
16일 일본 국토교통성 교통정책심의회 해사분과회 해사 이노베이션 부회가 작성한 '안정적 국제 해상수송 확보를 위한 조선업의 바람직한 모습 및 기반 정비 정책에 대해' 자료에는 일본 조선업의 공정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한국의 조선업 지원에 대해 시정을 요구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는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반대를 명확히 한 것으로 해석된다. 실제 2020년 2월 WTO가 공개한 한일 조선업 분쟁(DS594) 양자협의 요청서에 따르면 일본은 우리나라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지분 전량 약 5970만주를 현대중공업에 현물출자하는 대신 현대중공업그룹 조선해양 지주사인 한국조선해양으로부터 상환전환우선주 1조2500억원 어치와 보통주 600만9570주를 받기로 한 점을 문제 삼았다. 현금 동원 부담을 줄여주는 '특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유동성 확보를 위해 제3자 배정 유상증자로 1조5000억원을 지원하고, 필요시 1조원을 추가 지원하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본은 보조금과 상계조치에 관한 협정(SCM) 협약과 1994년 관세·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GATT) 위배를 이유로 2018년부터 총 두 차례에 걸쳐 우리나라를 WTO 협정 위반으로 제소했다.
일본은 이번 자료에서 다양한 플랫폼을 통한 대처도 주문했다. 구체적으로 OECD 조선업이사회 등과 공조해 조선 수급과 선가를 조사·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우리 정부의 공적 지원 등을 들여다봐야 한다는 취지다. 이사회 주요 참여국은 현재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합병 심사를 진행 중인 일본과 유럽연합(EU) 등이 포함돼 있다. 일본은 한일조선과장회의 등 2개국 간 회의에서 시장 건전화를 위한 정책협조 논의도 실시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태도는 양사 합병을 위한 일본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 결과를 예측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서는 일본 정부의 양사 합병에 대한 의중이 안갯속이었다.
다만 일본이 양사 합병을 최종 승인할 것이란 예상도 나온다. 일본 역시 올해 초 자국 1, 2위 조선사인 이마바리조선과 재팬마린유나이티드 합작사를 설립하는 등 조선업 덩치 키우기에 나선데다, 최대 경쟁국인 중국도 앞서 합병 승인을 해줬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일본을 비롯한 EU, 한국 등 3개국 경쟁당국 일정과 절차에 맞춰 관련 사안을 충실히 설명할 것”이라면서 “기업결합심사를 원만히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류태웅 기자 bigheroryu@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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