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발전한다. 그러나 발전된 기술을 처음 사용하는 인간은 익숙한 과거의 눈길을 거두지 못한다. 이 같은 현상을 후사경주의라고 일컫는다.
인쇄술 초기에 인간의 필사체를 모방한 활자를 만들었고, 콘크리트 건축 초기에는 목조 무늬를 흉내냈다. 대다수 로봇은 사람 외관을 하고 있다. 정서적으로 자연스럽게 다가가기 위해 로봇에 팔·다리·머리를 달아 주고, 눈을 깜빡이게 한다. 전기차 또한 화석연료 엔진의 진동과 소음을 추가한다. 신기술이 옛기술 질감을 모사한 후사경주의다.
홍대 T팩토리에서 접한 오큘러스 퀘스트2 콘텐츠에도 후사경주의가 녹아 있었다. '리얼 VR 피싱'은 실제 낚시터를 가상현실(VR)로 구현했다. 낚시터에서 물고기를 낚아 올리는 순간 물고기와 눈이 마주쳤다. 파닥거리는 물고기가 그대로 발 앞에 떨어졌다. 파고든 바늘 때문에 고통스러운지 뻐끔거리는 입, 다닥다닥 붙어 있는 비늘, 손에 쥔 리모컨으로 전해지는 진동과 물고기의 무게감이 느껴졌다.
'아름다운 낚시터에서 실감나는 낚시를 하는 힐링 콘텐츠'라는 개발자의 의도가 이용자에게 그대로 전달될 지 의문이다. 후사경주의가 초래한 '불쾌한 골짜기' 때문이다. 불쾌한 골짜기는 어느 순간 가짜가 진짜 같은 것으로 구현됐을 때 느끼는 불편함이다. 제작자는 사실성에 강박감이 있지만 이용자는 과장된 사실성에서 낯선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
불쾌한 골짜기는 지금까지 시도된 후사경주의가 어리석었음을 보여 준다. 실제 물고기보다 더 물고기처럼 튀어 오르며, 고통의 진동과 무게까지 전달되는 상황은 감탄을 자아내기보다 불쾌감을 유발할지 모른다.
르코르뷔지에라는 걸출한 건축가의 통찰을 거치며 콘크리트라는 재료의 특성이 살아났듯 이제는 신기술에 있는 고유한 결을 찾아내는 감수성을 누가 먼저 갖추느냐의 경쟁이다. 기술 발전에 이어 문화 트렌드를 만들고자 할 때 곱씹어야 할 교훈이다.
손지혜기자 j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