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공사 신재생에너지 직접 참여를 두고 민간발전 업계와 시민단체가 반발하고 있다. 한전은 그간 경험을 활용해 해상풍력 등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참여해 국내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확충과 산업을 견인할 수 있다고 본다. 반면에 민간발전 업계는 한전 같은 거대 공기업이 참여하면 산업 생태계가 훼손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전문가는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투명하게 계통연계 정보를 공개하고, 국내 중소기업과 상생할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전 “최고 수준 발전원가 경쟁력으로 국민 부담 완화”
송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7월 한전의 신재생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시장형 공기업(한전)이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신재생 발전사업을 하는 경우에 한정해 전기사업자에게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허가하는 내용을 담았다. 규모가 큰 시장형 공기업 중심으로 대규모 신재생 발전사업의 인프라를 조성하고 민간 기업이 동참하는 산업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육성하고자 하는 취지다.
현행법상 한전은 송·배전 및 전기판매 사업만 할 수 있다. 2001년 발전과 판매를 분리한 전력시장 구조 개편 이후 발전은 한전 6개 발전공기업과 민간업체가 맡고 있기 때문이다. 개정안에서는 규모가 큰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한 해 한전의 직접 참여를 허용한다.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직접 참여하면서 민간 주도 개발이 어려운 해상풍력과 같은 대규모 사업에서 공적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본다. 대규모 투자여력과 연구개발(R&D) 역량을 갖춘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직접 참여해 산업을 견인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한전은 특히 최고 수준 발전원가 수준으로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개발해 국민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국내 대규모 신재생에너지 발전 공급망 국산화율을 높이고, 국내 관련 기업과 해외에 동반 진출할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 한전은 국내외에서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발전 사업 경험을 갖고 있다. 국내에서는 특수목적법인(SPC)을 통해 해외사업에 참여하고,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굵직한 발전 사업에 참여해왔다. 한 예로 요르단에서는 89.1㎿ 규모 육상풍력을, 중국 내몽고에서는 1017㎿급 대형 육상풍력을 상업운전하고 있다. 또 국내에서는 한전 주도 SPC를 통해 서남해와 제주한림 해상풍력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이 같이 국내외에서 다양한 발전사업 참여 경험을 쌓으면서 국내 발전사업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와 함께 송·변전설비 건설·운영 분야 풍부한 경험은 한전이 진출하려는 대규모 해상풍력에서 특히 중요한 역량이다.
한전 관계자는 “한전은 석션버켓, 터빈 일괄설치기술 등 사업기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자체 기술을 보유했다”면서 “해상풍력 등 사업에 직접 참여하면 SPC로 추진할 때보다 사업비를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다.
◇민간발전업계 “한전 발전사업 참여, 시장공정성 해칠 수 있어”
한국풍력산업협회 등 발전업계는 송·배전 사업을 담당하는 한전이 발전 사업에 참여하면 시장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한전 발전 참여는 전력산업구조개편 취지를 훼손하는 조치이며, 한전은 전력계통 증설 등 고유 업무에 집중해야 한다고도 했다.
가장 민감하게 반발하고 있는 곳은 민간 풍력발전사와 발전공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풍력산업협회다. 한전이 해상풍력을 콕 찝어 언급하면서 신재생에너지 발전 직접참여를 꾀하고 있기 때문이다. 풍력산업협회는 한전이 현행 법령에 따라 송·배전사업과 전력판매·시장운영 부문에 대해 독점 권한을 갖고 있고, 발전사업허가 이전 사업 예정 입지에서 '계통연계 가능 용량, 경과지 검토'부터 '신재생 공급인증서(REC) 거래가격에 대한 심의 및 비용평가' 등 중요한 인·허가 곳곳에서 심판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풍력산업협회는 한전이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참여하면서 내건 조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풍력산업협회에 따르면 한전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에 직접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사업규모와 범위 제한 △RPS 의무이행과 REC 거래 제한 △회계·조직 분리를 통한 원가 검증 △망 정보 공개와 금지행위 관련 규정 강화를 제시했다.
풍력산업협회 관계자는 “한전이 외부 위원을 두든 부서를 따로 구성하든 같은 회사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이지 않나”라면서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내부에서 결정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기후솔루션, 민간발전협회, 에너지전환포럼, 전국시민발전협동조합연합회 등 단체도 한전 신재생에너지 발전 직접 참여에 대해 반대 의견을 표했다. 이들 단체는 지난 15일 '한전의 발전사업 진출과 망중립성 훼손, 이대로 괜찮나'를 주제로 토론회를 연 바 있다. 또 국회에서는 일부 여당 의원이 한전의 신재생에너지 사업 진출에 대해 반대 의견을 개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에너지전문가 “한전, 국내 기업과 상생할 방안 필요”
에너지 전문가들은 한전이 신뢰를 얻기 위해 계통연계 정보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내 업체와 상생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정부가 해상풍력 발전방안에 따라 2030년까지 국내에 12GW 규모 해상풍력 설비를 건설하겠다고 했는데 지금 구축된 설비는 1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면서 “한전이 신재생에너지에서 해상풍력에 한 해 발전사업에 진출하고, 원전과 석탄발전 국산화에 성공했듯이 해상풍력에서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에너지업계 한 전문가는 “신재생에너지 직접 발전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망 중립성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면서 “선입·선출 방식 등 정보공개를 투명하게 해야 하고, 직접 PPA 등 전력 판매 부문을 공개하는 부분을 다 같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상근기자 sgb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