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가 단순히 선행 차원이 아니라 미래 세대를 위해 생태계를 바꾸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다.”
글로벌 시총 1위 기업 애플의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잡스'에는 그가 컴퓨터 조립 동호회에서 만난 스티브 워즈니악과 함께 차고에서 컴퓨터(시험 모델)를 만드는 모습이 나온다.
미국 굴지의 컴퓨터 회사 휴렛팩커드(HP)도 스탠퍼드대 동기인 윌리엄 휼렛과 데이비드 패커드가 허름한 차고에서 음향 발진기를 내놓으며 탄생했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 구글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도 차고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실리콘밸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들을 지원한 투자가 '혁신의 본산'이자 글로벌 공룡 정보기술(IT) 기업을 길러 낸 실리콘밸리의 힘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가 바라본 지점도 이 부분이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2일 수석비서관·보좌관회의에서 “최근 벤처창업가의 기부 행렬은 우리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의 잇따른 기부 소식이 전해진 데 대한 소회였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거들었다. 교육이나 복지와 같은 전통 방식의 기부도 훌륭하지만 최근 IT 기업 오너들의 기부 소식은 후배 양성, 우리나라 벤처·스타트업 토대를 단단히 다지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바라봤다. 기부를 비즈니스처럼 매우 구체화한 계획으로 추진한다고 평가했다.
김범수 의장 등의 사례가 애플, MS, 구글 등을 지원한 투자자의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실리콘밸리처럼 자신의 성공이라는 과실을 전통 방식의 기부가 아니라 나와 같은 길을 걷는 후배를 위해 투자, 사회에 환원하는 방향이라고 진단했다.
IT 기업 오너들이 전 재산의 절반을 사회에 환원하겠다는 선언이 잇따르자 여권에선 IT 기업 등을 대상으로 한 이익공유제, 사회연대기금 등 상생연대 3법 처리에 속도를 내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익공유제는 코로나19로 많은 이득을 얻은 계층이나 업종이 이익 일부를 사회에 기여, 피해가 큰 쪽을 돕는 방식이다.
공유와 기부는 본질부터 다르다. 대상도 다르다. 코로나19 피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국민을 돕는 일은 정부와 정치권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지금처럼 민간에 떠넘기는 행태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제는 김범수 의장과 김봉진 의장처럼 자수성가한 IT 기업 오너가 또다시 나타날 수 있도록 하는 생태계 조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영국기자 a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