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심사평가원 출범 20년차에 원장으로 취임해 앞으로 20년을 준비하며 '디지털 HIRA(심평원 영문명칭)'를 핵심 과제로 정했습니다. 만성질환, 고령화, 의료전달체계 등 당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업무를 효율화하고 국민에게 많은 혜택이 가도록 하겠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HIRA 4.0' 시대를 준비한다. '디지털 HIRA'를 슬로건으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디지털 혁신을 전방위로 추진한다. 국내 모든 의료기관 데이터가 모이는 만큼 ICT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디지털 혁신을 통해 환자 중심 의료를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심평원은 2000년대 초반 전자문서교환(EDI) 방식으로 진료비 청구를 확대하면서 'e-심평원' 시대를 열었다. 2011년부터 클라이언트서버(CS) 기반 환경을 웹 기반으로 전환하면서 '스마트 심평원' 시스템을 구축했다. 'HIRA 4.0' 시대는 클라우드를 기반으로 각종 의료 데이터를 원활하게 교류하고 이를 다시 개인 중심, 환자 중심으로 바꾸는 것이 골자다. 데이터 주권을 환자에게 돌려주고 의료 이용을 효율화할 수 있도록 한다. 여기에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ICT 신기술을 접목해 안전성과 효율성을 높인다.
지난해 4월 취임해 다음달 1년을 맞는 김선민 원장을 만나 올해 핵심 추진 과제와 중장기 비전에 대해 들어봤다.
대담=이호준 ICT융합부장
-원장 취임 2년차에 접어들었는데 지난 1년간 소회는. 올해 심평원이 중점적으로 추진할 과제와 사업은 무엇인가.
▲취임 후 코로나19 위기 대응이 핵심 업무 중 하나였다. 위기 극복 과정에서 심평원의 역량과 직원의 전문성에 다시금 놀랐고 두려움보다 책임감으로 소임을 다하는 헌신과 열정을 느꼈다. 심평원은 국민이 질 높은 의료서비스를 적정한 비용으로 제공받도록 하기 위해 심사와 평가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
올해 최우선 과제는 심사평가체계 개편 작업을 차질없이 진행해 본 궤도에 안착시키는 것이다. 지난해 말 구체적인 계획안을 제시했고 조직 개편까지 마무리했다. 이제 심사는 단순히 명세서를 심사해 비용을 지급하거나 조정하는 일에서 벗어나 청구데이터를 분석해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고 그 결과를 의료기관에 적극적으로 안내하는 역동적인 일이 될 것이다.
보장성 강화 후속정책도 적극 지원한다. 비급여 항목 관리를 어떻게 하느냐가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됐다. 또 그간 급여화됐던 항목에 대해 재평가를 시작하고 제도화할 계획이다. 3D·인공지능(AI)·디지털치료제 등 기존 분류로 정의하기 어려운 새로운 형태 의료서비스를 어떻게 급여화할지도 고민한다.
가장 근본이 되는 것이 디지털 혁신이다. 코로나 위기에 빛을 발한 심평원의 정보통신 역량을 더욱 고도화하려고 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AI,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새로운 기술을 본격 도입해 심평원 업무 전체를 고객의 편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업그레이드할 계획이다.
-올 초 조직개편을 통해 디지털혁신본부를 신설하고 ICT전략실을 만드는 등 ICT 활용에 많은 힘을 싣고 있다. 디지털혁신본부의 역할과 ICT를 통한 업무 고도화 로드맵은 무엇인가.
▲심평원 'HIRA 시스템'은 지난 20년간 고도화된 ICT를 보건의료 관리에 완벽 적용한 시스템으로 평가받는다. 이제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 각종 데이터를 연계·활용할 수 있는 유연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정보 주체이자 사용자인 국민을 위한 서비스로도 연결돼야한다. 이를 위해 심평원 업무 전반을 빅데이터와 AI에 기반한 정보체계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이 요구된다. 디지털 전환을 이끌기 위해 올 초 ICT전략실, 급여정보분석실, 빅데이터실, 정보운영실 총 4개실로 구성된 디지털혁신본부를 신설했다.
올해는 우선 디지털 혁신 기반이 되는 'HIRA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할 계획이다. 심평원이 보유한 의료기관 중심 데이터를 사람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국민 중심 마이데이터도 고도화할 계획이다. 기존 심평원이 제공하는 '내가 먹는 약! 한눈에' 서비스를 확장해 각종 수술과 검사 등 내가 받은 진료정보까지 한눈에 알 수 있는 의료정보 제공 서비스를 추진할 예정이다. 안전하고 편리한 서비스 구현을 위해 블록체인, 사용자 위치기반 서비스(LBS) 등 신기술 적용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형 뉴딜을 지원하기 위해 심평원 디지털 뉴딜 'H-뉴딜' 계획도 수립했다. 심평원만큼 양질의 의료영상 데이터가 모두 모이는 곳이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다. 올해 심평원 내 실증랩을 구축해 AI 기업이 심평원의 양질의 의료영상 데이터를 안전한 환경에서 학습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등 의료 AI 기업 등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지원할 계획이다.
-지난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심평원의 디지털 인프라가 큰 역할을 했다. 올해 백신 접종과 더불어 지속 가능한 방역 체계로 전환 과정에서 역할과 과제를 어떻게 보고 있나.
▲2020년은 코로나19 대응에 '올인'한 해였다. 사태 초기부터 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DUR)와 해외여행력 정보제공 프로그램(ITS)을 통해 의료기관과 약국에 해외입국자 정보를 실시간 제공해 의심 환자 조기 발견에 도움을 줬다. 또 국내 마스크 대란을 해결한 공적마스크 5부제를 지원하는 '마스크 중복구매 확인시스템'을 사흘 만에 자체 개발해 공급했다. 확진환자관리시스템을 통해 전국 확진자들의 건강 상태도 중앙에서 모니터링 할 수 있도록 했다.
추가 대유행 우려가 있고 코로나19가 종식되더라도 신종 전염병과 공생은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부분이다. 감염병 예방에는 여러 필요조건이 있지만 심평원이 관리하는 인력과 병상, 장비 등 의료자원 정보의 활용이 절대적이다. 이를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할 예정이다. 각종 재난 상황에 활용되는 의료자원을 주먹구구식으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체계를 만들어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보건의료분야 가명정보 결합전문기관으로 지정돼 올해 본격 가동이 이뤄지는데 어떤 혁신 사례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나.
▲심평원이 보유한 보건의료정보가 의료기술 발전이나 신약개발 등으로 이어져 국민 의료 이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다양한 접목 시도를 할 계획이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백신 부작용 조사를 위해 심평원의 보유 진료내역, 기저질환, 알러지 반응 정보와 통계청의 사망정보, 질병관리청의 접종일, 백신 종류 등 정보를 결합해 연구하면 제약사, 의료기관이 보유한 임상데이터만으로 임상시험하는 경우보다 백신 부작용 원인을 합리적이고 신속하게 파악할 수 있다.
데이터 빅뱅 시대를 맞아 결합전문기관을 중심으로 데이터 활용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 만성질환, 고령화, 의료체계 작동 등 문제를 데이터를 통해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문재인케어' 4년차를 맞아 보장성 강화와 의료비 절감이라는 긍정 효과 한편으로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다. 보장성 강화와 건보 재정 건전성 확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심평원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7년 시작된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 '문재인케어'를 통해 지난해까지 총 3346개의 비급여 항목을 검토해 1713 항목을 급여화했다. 올해도 로드맵에 따라 비급여 1426항목을 검토해 급여화할 계획이다. 심평원은 보장성강화 대책에 투입된 건보 재정이 국민을 위해 효과적으로 사용되도록 모니터링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문재인케어 3년차까지 성과로 중증질환 보장률을 81.2%까지 높였다. OECD 평균 80%를 상회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전체 건강보험 보장률은 아직 64.2%에 그친다. 이는 남는 비급여 진료의 남용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의 실효성 확보를 위해 비급여의 급여화와 남는 비급여 관리 대책이 동시에 진행돼야한다. 심평원은 예전부터 진료비확인 신청업무와 비급여가격공개 업무를 실시해왔고 지난해에는 비급여 항목 코드를 정비했다. 비급여 명칭과 코드의 표준화, 비급여진료비용 정보공개 항목 확대, 비급여 진료 사전설명제도 정착에 힘쓸 예정이다.
급여항목 모니터링 성과도 있다. 심평원 모니터링 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뇌·뇌혈관 MRI 검사 급여 범위 확대 이후 두통·어지럼 등 경증 증상의 MRI 촬영이 과도하게 증가했고 충분한 사전검사 없이 MRI 검사가 이뤄지는 등 과남용 우려가 나타났다.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경증 증상에서 불필요한 검사를 줄이고 필수 수요 중심으로 MRI 검사를 적정화하도록 보험기준을 개선했다. 급여항목 확대에 맞춰 지속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급격한 의료이용 변동 등 문제점을 조기 발견해 개선할 계획이다.
-의료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 디지털치료제, 전자약 등 새로운 의료서비스의 등장과 급여화에 대해 업계에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정책 방향과 계획은 무엇인가.
▲디지털 치료기기 등 새로운 융합기술 개발 가속화에 맞춰 2019년 AI 영상의학과 3D 프린팅, 2020년 병리학 분야의 AI 기반 의료기술에 대해 요양급여 여부 평가 가이드라인을 마련해 발표했다.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신의료기술은 과거와 차원을 달리한다. 새로운 치료 패러다임이 나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급여 원칙을 수립하는 것이 당장의 과제다.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변화인데다가 해외 국가들과 수가 제도가 달라서 벤치마킹할 만한 사례가 많지 않다.
준비를 위해 현행 혁신적 의료기술의 보험 등재 제도를 재점검하는 워킹그룹을 구성할 예정이다. 워킹그룹은 실무 부서와 연구 부서의 협업 형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발자와 기성 의료인들 사이 간극을 좁히는 것이 굉장히 어렵다. 하반기부터는 본격적으로 의료계와 산업계 현업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청취하는 기회를 마련하겠다.
정리=정현정기자 iam@etnews.com
사진=김민수 기자 mskim@etnews.com
○…김선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장은 서울대 의과대학 예방의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 의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1998년부터 한림대 의과대학 교수, 한국보건산업진흥원 수석연구원 등을 거쳤다.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연구담당관, 세계보건기구(WHO) 수석기술관 등을 지내고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의료의 질과 성과 워킹그룹 의장으로 활동했다. 2018년부터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기획상임이사로 재직하며 제2사옥 건립 등 지방 이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지난해 4월 제10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2000년 심평원 출범 이후 첫 여성 원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