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이하 융기원)은 2008년 서울대학교와 경기도가 연구소 개념으로 설립해 2018년에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이 됐다. 당시는 융합이라는 용어가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10여년간 서울대 교수들의 노하우를 쌓은 융기원은 지역 기반 연구개발(R&D)에 매진한다. 경기도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첨단산업과 뿌리산업, 농수산업이 혼재한 복합적이고 융합적인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 지역에 기반해서 과학기술 수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역문제를 풀어간다. 임기 1년을 보낸 주영창 원장에게 향후 계획을 들어봤다.
대담=김승규 벤처유통부장
-취임 1년을 맞이했다. 임기 2년으로 전반기를 보냈데, 전반기 소회와 후반기 계획은.
▲기관으로서는 사회 전반에서 자율주행, 스마트시티, 수소차, 전기차 등 과학기술에 대한 많은 관심이 생겼다. 지역에는 다양한 사회 문제가 있다. 지역 기반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을 느끼고 무궁무진한 비전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새로운 대한민국을 위한 시도와 이에 대한 사명감이 크다. 차세대융합기술원은 지역과 대학이 연계한 최초 기관으로 롤모델이 됐다. 특정인에게 한정된 과학기술을 문턱 없는 연구원으로 널리 오픈할 계획이다.
개인적으로 교수로 생활하다가 공공기관의 장이 되었다. 새로운 관점으로 연구에 대해 접근하게 됐고 표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고 있는 느낌이다.
-경기도 공공기관으로 편입된지 2년 반이 지났다. 달라진 점과 서울대학교의 역할은 뭔가.
▲목적이 달라졌다. 공공기관 편입 이전에는 서울대 연구소로써 전문성이 주로 요구됐다. 지금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는 게 주 목적이다.
대학연구기관에서 지자체 산하 공공기관이 되면서 행정적으로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공무직의 정규직화, 공무직 근로 여건 개선을 위한 단체교섭, 교육제도 확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 경영평가 추진, 경기도 종합감사 수감 등이 예다.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사회적 책무와 의무에 대한 다양한 역할이 늘어났다.
서울대와의 연계의 필요성은 여전하다. 융기원의 현재 전임 연구원은 25명이다. 비 전임을 포함해도 40여명이다. 이들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다. 역할 분담이 중요하다.
공동출연법인으로서 경기도가 행정, 예산, 운영의 중심이 되고 있다면, 서울대는 R&D, 실증화 사업 및 인적 자원 활용의 중심이 되고 있다.
서울대의 R&D 능력을 경기도라는 테스트베드 위에 실현 한다면, 대한민국의 표준을 만들고 신산업 창출을 통한 도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것이다. MIT의 링컨랩처럼 대학의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
지자체는 정책을, 지역 주민은 정책 참여를, 지역 대학과 기관은 R&D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자율주행차 '제로셔틀'의 시범운행 허가를 위해 자동차, 도로, 교통 등 규제 혁파를 이뤄낸 것이 좋은 예다.
-융기원 같은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국가가 주도하는 중앙집중식 R&D는 기초 및 거대과학 분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때문에 우리 주변, 우리 지역사회 문제를 과학기술로 해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지자체가 처음부터 별도 조직을 만드는 것보다는 지자체 R&D 예산을 활용해 기존 연구조직을 응용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과학기술 발달과 함께 각 지자체도 과학 관련 전담부서가 생기기 시작했다. 대부분 지역사회 발전과 문제해결을 위한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경기도는 미래산업과, 과학기술과, 대전광역시는 과학산업국, 과학부시장 등을 뒀다. 기후, 환경, 스마트시티, 빅데이터 등 과학과 관련된 다양한 부서가 지자체별로 존재한다. 서울·대전·광주·강릉·부산 등이 과학산업진흥원을 운영하고 있다. 지역사회의 문제는 현장에 능통한 전문가 집단에서 해결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하지만 진흥원, 테크노파크(TP)와 전문 연구소의 차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융기원은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으로서 도 수탁 사업뿐만 아니라 국책 연구과제 수주를 통해 전문 연구기관으로서 전문성을 증명하고 기관 운영을 위한 예산(간접비)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과제를 수주하고 직접 운영할 수 있는 부분이 바로 진흥원(예산·지원관리 기관), TP(인프라·지원관리 기관)와 전문 연구기관의 차이다. 병원으로 비유하면 보건소와 종합병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기관 이름 그대로 차세대 융합기술을 연구하는 곳이다. 주로 어떤 융합에 중점을 두는지.
▲경기도 및 지자체, 도내 대학 및 연구기관을 잇는 구심점 역할이다. 경기도 인구가 1350만으로 국가 GDP의 3분의 1을 차지한다. 반도체·자동차 등 첨단산업부터 뿌리산업, 농업, 임업, 수산업 등 거의 모든 업군이 분포돼 있다. 그만큼 지역사회 문제도 다양하고 해결해야 할 것도 많다. 지역사회 문제 해결을 위한 실증화 융합연구에 중점을 뒀다.
크게 5개 연구 분야로 △자율주행자동차 △시흥스마트시티(미세먼지 라이다 스캐닝 모니터링 시스템) △환경 안전(잭 서포트, 소방안전헬멧) △지능화 융합(영유아 어린이집 안전 관리) △소부장 사업을 통한 도내 반도체 중소기업 기술력 강화다.
자율주행센터 기업실증 강화 사업으로 국내 최초 실시간 레벨4 자율주행차가 운행되고 있다. 판교가 시범운행지구로 지정되면 카카오모빌리티, 현대자동차와 유상서비스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2019년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소부장 자립을 추진했다. 융기원은 경기도에서 주관기관 역할을 했는데, 성과는.
▲재료공학을 전공한 사람으로서 국민들이 소부장이라는 걸 접하고 알게돼 감격스럽다. 2차대전 이후 후진국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장치산업 위주다보니 소재부품은 등한시하게 됐다.
경기도는 소부장 산업 자립화를 위해 융기원에 연구사업단을 설치하고 2019년부터 2022년까지 300억원을 지원한다. 또 '경기 기술독립 펀드(가칭)'를 1000억원 규모로 조성해 소부장 분야의 집중 투자에 나섰다.
융기원이 운영하는 경기도 소재부품장비 연구사업단은 현장밀착형 지원사업을 수행하고 있다. △대기업(수요)과 도내 중소기업(공급) 기업 연결 △실질적 도움을 줄 수 있는 문제 해결사 제도 운영 △중앙분석실·오픈랩 등을 도내 수요자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오픈형으로 운영한다.
소부장 분야 선진국인 일본과 독일은 우리보다 기술이 수십년은 앞서 있다. 단기간에 이를 따라 잡는 것은 매우 어렵다.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메이커스페이스 육성에 공들이고 있는데, 한국에서 메이커스페이스 역할과 발전 방향은.
▲기본적으로 국내 메이커스페이스는 창업가들이 제품 및 서비스 등을 개발할 수 있도록 공간과 장비를 제공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지역 수요자 및 기관 성격과 특성에 맞춰 메이커스페이스도 분류돼야 한다.
융기원도 올해 고도화된 '지능형 융합기술 시제품 제작소' 구축을 위한 기반을 마련한다. 기존 메이커스페이스와 차별화된 시스템으로 운영할 예정이다.
공간과 장비는 똑같이 제공하면서 전문인력과 멘토링, 소통 기능을 더한다. 아이디어를 완제품에 근접한 시제품으로 만들고 테스트해볼 수 있도록 만들려고 한다. 융기원의 박사급 전문인력이 지원한다. 물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공간으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든다.
융기원 내 첨단 공간 및 설비를 활용한 딥테크 시제품 개발 플랫폼을 구축해 도내 창의적 원천기술 상용화를 위한 토털 솔루션을 제공할 계획이다. 유니콘 기업을 향한 창업가들의 꿈이 시작되는 공간이 될 것이다.
-그 외 원장께서 하고 싶은 말씀해 달라.
▲지난해 과학계가 뽑은 10대 뉴스와 일반인이 뽑은 10대 뉴스가 대부분 일치했다. 그동안 그런 적이 없었다. 그만큼 과학기술이 일반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 우리는 아직도 선진국을 쳐다보고 있다. 새로운 도전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패가 용인돼야 한다.
융기원은 경기도민의 것이다. 연구자들만의 문턱 높은 공공기관이 아니라 열린 연구원을 지향한다. 기술창업, 융합과학청소년스쿨, 융합문화콘서트 등 과학기술 대중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올해도 도내 대학 및 유관 연구기관들과 협업을 추진해 명실상부한 경기도 유일의 R&D 기관으로서 역할을 충실히 해나갈 계획이다.
재료분야 전문가로서 경기도 소재부품장비 연구사업단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할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고 기틀을 마련하겠다. 그렇다고 도민 삶과 동떨어진 연구가 아니라 실제 도정과 도민의 삶에 도움이 되는 연구주제(환경, 안전, 편리성 등)들을 지속적으로 발굴하고 경기도, 도의회, 도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려 한다. 많은 관심과 애정을 부탁드린다.
◇주영창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장은
주영창 원장은 1965년생으로 서울대학교에서 금속공학으로 학사와 석사를 졸업하고 MIT에서 재료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미국 AMD를 거쳐 1999년부터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로 재임하고 있다. 대학기술산업지원단장을 역임했고 2020년 3월부터 융기원 원장을 맡고 있다.
그는 교수와 원장직을 겸직하면서 고민을 해결하는 기회로 삼는다. 연구원이나 학교에만 있으면 생각이 매몰되기 때문이다.
그는 10년전 수원 광교에 융기원이 세워진 걸 다행이라고 여긴다. 인프라에 대한 노하우가 쌓였기 때문이다. 그가 지향하는 메이커스페이스도 검증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선택해 매칭하는데 있다. 정보와 제품이 모이면 벤처캐피털도 모여든다. 그는 딥테크놀러지 매칭이 미쉐린가이드와 일반 전화번호부의 차이라고 설명한다.
요즘은 코로나로 행사도 줄어들어 생각할 여유가 더 많아졌다. 학생들과 콘퍼런스도 영상회의로 대체하는 등 코로나가 바꾼 일상과 사회생활을 내재화하는데 노력하고 있다.
정리=김정희기자 jhakim@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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