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스바겐, '제2의 테슬라 선언'...전기차·배터리·충전까지 직접 한다

폭스바겐그룹이 15일(현지시간) 온라인 행사 '파워 데이'를 통해 전기차뿐 아니라 배터리 제작·생산을 비롯해 배터리 후방산업, 충전 서비스까지 전부 내재화한다는 전략을 선언했다.

전기차 1위 기업 테슬라가 지난 10년 걸쳐 단계적으로 실행해온 전략을 폭스바겐은 단 하루 만에 다 쏟아냈다. 전통 완성차 업체 최초로 테슬라의 '패스트 팔로어'가 된 셈이다.

폭스바겐그룹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그룹 차원의 배터리 및 충전 관련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는 파워데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폭스바겐그룹 헤르베르트 디스 회장이 그룹 차원의 배터리 및 충전 관련 기술 로드맵을 발표하는 파워데이에서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특히 이날 폭스바겐그룹은 2030년까지 연간 240Gwh 규모 배터리 독자 생산 계획과 함께 전체 전기차 생산분의 80%를 자체 규격 각형 배터리를 개발, 이 배터리만을 쓰겠다고 선언했다. 또 고급형 모델은 리튬이온 삼원계(NCM)를, 보급형과 저가형은 각각 하이 망간계열과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채택하기로 했다. 이는 테슬라가 지난해 '배터리 데이'를 통해 밝힌 차종별 배터리 채택 전략 및 내재화 전략과 같다. 다만 폭스바겐은 테슬라의 원통형 '4680'이라는 전혀 새로운 배터리 대신 이미 검증된 각형 방식을 채택해 위험 부담을 최소화했다.

폭스바겐그룹은 파트너십 모델을 통해 총 생산량 240GWh 규모의 기가팩토리 6곳을 구축, 가동함으로써 배터리 공급 안정화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폭스바겐그룹은 파트너십 모델을 통해 총 생산량 240GWh 규모의 기가팩토리 6곳을 구축, 가동함으로써 배터리 공급 안정화를 확보한다는 전략이다.

각형·파우치 방식을 모두 채용한 폭스바겐이 대량 생산에 따른 가격경쟁력 확보에 유리한 각형을 독자 규격화하면서 공간 활용도를 높인 CTC(Cell To Car) 기술을 더해 에너지 밀도를 높인다는 전략 역시 테슬라와 같다.

이에 기존에 유력 배터리 공급처면서 각형이 없는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주력 거래처에서 밀릴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폭스바겐이 각형만 쓰겠다는 80% 물량 이외 20% 물량만을 놓고 중국과 일본 등 다수의 업체와 경쟁해야 한다.

또 폭스바겐이 자체 규격에 '리튬이온계열'과 '리튬인산철' 모두를 사용하기로 함에 따라 폭스바겐그룹의 배터리 합작사 '노스볼트'와 글로벌 배터리 1위 기업이자 파우치·각형에다, 리튬인산철·삼원계 배터리를 보유한 중국 CATL이 한층 더 유리한 고지를 점하게 됐다.

기존 폭스바겐의 배터리 공급사인 삼성SDI도 각형이 주력이지만 한층 더 심한 경쟁상황에 높이게 됐다. 또 다른 기존 공급사인 일본 파나소닉, 중국 궈쉬안뿐 아니라 BYD, 리센, 완샹A123 등과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폭스바겐그룹은 새로운 통합 셀 및 시너지를 통해 배터리 비용을 최대 50%까지 절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폭스바겐그룹은 새로운 통합 셀 및 시너지를 통해 배터리 비용을 최대 50%까지 절감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폭스바겐은 이날 배터리셀을 비롯한 배터리시스템과 배터리 재사용(Reuse)·재활용(Recycle) 등 후방산업은 물론 독자 소프트웨어(SW) 기술을 활용해 유럽과 미국 등 충전인프라까지 독자 사업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테슬라가 이미 독자화한 사업 모델과 유사하다.

폭스바겐은 2030년까지 유럽 내 최대 6개 배터리 생산라인을 구축해 연간 240Gwh 규모 독자 규격 배터리를 생산할 방침이다. 이 중 2개 공장은 이미 노스볼트가 맡기로 했다. 나머지는 폭스바겐 배터리 규격에 동의한 유력 공급처를 통해 충당할 계획이다. 이들 생산공장은 합자형태가 유력해 보인다. 이 역시도 '4680' 배터리 독자개발·생산을 선언한 이후 해당 배터리를 생산할 수 있는 업체가 있으면 협력하겠다고 밝힌 테슬라의 추가 전략과 같다.

이번 폭스바겐 전략에 국내 배터리 3사 모두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은 우선 각형 배터리 타입 개발을 고민해야 한다. 삼성SDI 역시 폭스바겐과 이미 관계를 맺은 노스볼트와 CATL 못지않은 차별화 제안을 해야하는 한다. 이미 미국 등에 대량 생산 공장 구축을 결정한 국산 배터리 업계가 유럽에 새로운 투자를 결정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부분이다.

박철완 서정대 교수는 “테슬라에 이어 전통자동차 기업 폭스바겐까지 내재화를 선언하면서 기존 배터리 업체 입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게 됐다”며 “현대차도 이미 내재화 움직임 있는 만큼, 완성차 업계의 독자 규격 배터리 내재화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