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과 플랫폼 강자인 신세계그룹과 네이버가 손을 잡은 것은 쿠팡의 광폭 행보를 견제하고 온라인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쿠팡의 성공적 기업공개(IPO)가 촉발한 위기감이 e커머스 영역에서 경쟁 관계였던 두 회사가 우군 관계를 맺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16일 신세계그룹과 네이버는 2500억원 규모의 상호 지분투자 협약을 맺었다. 양사는 이번 지분 교환으로 상품과 플랫폼, 물류 등 전방위에 걸쳐 적극적 협업을 추진한다. 네이버가 투자한 물류 파트너사까지 더해 커머스를 구심점으로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골자다.
쿠팡의 막대한 자금력은 대기업의 위기를 불러왔다. 쿠팡은 미국 뉴욕증권거래소(NYSE)에 상장하며 5조원이 넘는 실탄을 확보했다. 조달한 자금은 물류 인프라 구축과 제품, 마케팅, 서비스 등 국내 e커머스 사업 고도화에 투입된다.
쿠팡이 공세를 예고하면서 국내 기업간 우군 확보가 시급해졌다. 가만히 있다가는 신세계의 본업이자 네이버의 새 캐시카우인 쇼핑 시장을 쿠팡에 통째로 내줄 수 있다는 극심한 위기감이 반영됐다.
두 회사의 협력도 서로의 약점을 보완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마트는 SSG닷컴 점유율을 끌어올려 온라인 시장 침투력을 높이고, 네이버는 상대적 열위인 신선식품과 명품 등 상품 구색을 강화할 수 있다. 또 이마트와 백화점 등 전국 7300여 곳의 오프라인 거점을 활용해 전국 단위 풀필먼트, 라스트 마일 서비스를 구축한다. 상품 소싱부터 물류, 배송까지 자금력을 바탕으로 혼자 모든 것을 다하는 쿠팡의 사업 모델과 전면 경쟁이 가능해진다.
오린아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이마트와 네이버의 지분 교환은 온·오프라인 판매와 오프라인 물류 거점화, 라스트마일 배송까지 e커머스 내 완전체 모델을 완성하는 첫 사례”라고 평가했다.
양사의 지분 혈맹은 급변하는 e커머스 시장에서 결합이 새로운 생존 공식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 제휴를 넘어 지분 교환을 통해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구속력 있는 협업 모델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졌다.
글로벌 시장서 자금력을 확보한 쿠팡과 빅테크 기업의 참전, 스타트업은 물론 아마존의 한국 진출까지 국내 유통 시장 경쟁 환경은 녹록치 않은 상황이다. SK텔레콤 11번가가 아마존과 손을 잡고 GS그룹이 GS리테일과 홈쇼핑 합병으로 유통 사업을 일원화한 것도 시너지 효과를 높이려는 생존 전략의 일환이다.
이날 예비입찰을 마감한 이베이코리아가 누구 품에 안기는지 역시 중요한 변곡점이 될 전망이다. 신세계를 포함해 SK텔레콤과 카카오, MBK파트너스 등이 인수전 참여를 결정했다.
업계 관계자는 “독자 생존을 꾀했던 플랫폼·유통사들이 합종연횡에 나서면서 업계 재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면서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 변화가 빠르게 이뤄지면서 경쟁자 관계라도 우군으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해졌다”라고 말했다.
박준호기자 junho@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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