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친환경 디지털 시대' 조선업계가 나아갈 길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 [사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제공]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 [사진=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제공]

2021년 새해와 함께 한국 조선업계 2020년도 선박 수주량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는 기분 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이와 함께 2021년 전 세계 발주가 2020년보다 23.7%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한국 조선 산업이 다시 생기를 찾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한편 조선산업계 등 해사산업계 전체는 지금까지 경험해 본 적 없는 두 가지 변화를 맞고 있다. 탈탄소화, 디지털화가 그것이다.

2018년 4월 14일 국제해사기구(IMO)는 제72차 해양환경보호위원회에서 '금세기 내 해운업계 탄소 배출을 제로로 만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2030년까지 선박 평균 에너지효율을 40% 개선한다고 밝혔다. 나아가 2050년까지 전체 해운업계 온실가스 배출량을 50%로 줄이는 구체 목표를 제시했다.

초기 전략 채택 이후 세계 해사업계는 코로나19 유행 속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논의를 진행, 목표 달성을 위한 규정을 개발하고 있다. 특히 새로 건조되는 선박만을 대상으로 하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 현재 운항 중인 선박에도 에너지효율 규제인 EEXI(Energy Efficiency for eXisting ship Index)와 CII(Carbon Intensity Indicator)를 2023년부터 도입할 예정이다. 현존선의 에너지효율 개선을 위한 선박 개조와 함께 선박 대체 수요가 발생해 신조선 시장 활성화가 기대된다.

국내 조선산업계는 이 같은 변화에 적극 대응하면서 타국 조선 산업과의 기술 격차를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LNG 운반선을 수주·건조하면서 축적한 기술력을 토대로 LNG 추진선을 건조하는 한편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수소·암모니아를 사용하는 선박을 위한 기반 기술 및 표준을 확보해 나가고 있다.

다만 아직 이 같은 선박에 들어가는 기자재를 유럽, 일본 등 기자재 강국들이 주도하고 있어 관련 기자재 국산화와 경쟁력 확보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는 정부 사업을 통해 '소재·부품·장비 조선해양산업 협력단'을 운영, 국내 조선·기자재 산업이 관련 기자재를 개발·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IT 발달은 선박에도 영향을 미쳐 선박 고장을 예측하는 예지보전기술, 기상정보를 토대로 항로를 설정하는 항로최적화 기술 그리고 선박 자율운항기술까지 다양한 측면과 수준에서 기술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IMO는 이들 기술을 선박에 적용할 수 있도록 선원 탑승을 전제로 만든 기존 규정들이 자율운항선박(MASS)에 적용했을 때 문제는 없는지 검토하는 작업을 수행 중이다. 또 자율운항 선박 개발을 위해 MASS 시범운항 임시지침을 2019년에 승인했다.

선박이 자율운항하기 위해서는 각 부위에 설치된 센서에서 얻어지는 정보를 수집, 외부 데이터와 종합해 분석하는 작업이 필수다. 이런 선박을 건조하기 위해서는 내외를 오가는 수많은 장비 간 데이터 양식을 표준화해서 기자재 간 호환성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따라 그 표준을 주도하는 국가가 자율운항선박 기술을 선도하게 된다고 볼 수 있다. 국내 조선산업계도 표준화한 시스템 구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각 사가 가지고 있는 기술을 기반으로 표준화한 시스템 체계를 마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정부는 조선업계가 탈탄소화와 디지털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친환경선박법 등 장기 정책 마련과 함께 자율운항선박 기술 개발 사업을 수행하고, 미래 친환경 핵심 기술 개발 사업을 추진하는 등 연구개발(R&D)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다가오는 친환경·디지털 기술 시대에 한국 조선 산업이 지속 리더십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산업계와 정부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박의 추진체계 및 관련 인프라, 선박 내외 정보통신 시스템 등 모든 분야에 변화를 요구하는 시장, 규정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조선소 간 및 산업계-정부 간 협의가 수반돼야 한다. 조선산업계가 관련 기술을 개발·상용화할 수 있는 R&D 방향을 설정하고 나아갈 추진력이 필요하다.

대형-중소기업 간, 대형 조선소 간 R&D 마련을 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국내 조선산업계의 대응이 다른 국가보다 빨랐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조선 강국으로서 축적해 온 기술력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우리 조선소들을 기대해 본다.

정석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 상무 sjjeong@koship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