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논단]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 매어 쓸까?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지난해 광복절 열흘 전인 8월 5일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출범했으니 독립한 지 7개월이 넘었다. 신설 중앙행정기관 초대위원장이라는 영광은 잠시 뿐, 분주하고 치열하게 지냈다. 조직의 목표와 비전, 발전계획을 만들고, 공룡 정보기술(IT)기업의 개인정보 침해행위에 과징금을 처분했다. 코로나19 방역 과정에 수집되는 국민 개인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역학조사지원시스템 전반을 들여다봤다. 전자출입명부의 안전성을 확인하고 수기명부에 휴대폰 대신 개인안심번호를 쓰도록 했다. 가명정보 활용 기준을 정립하고 개인정보보호법 2차 개정을 추진 중이다. 유럽연합(EU) GDPR 적정성 결정도 착실하게 맺어지고 있다.

개인정보위가 출범하지 않았다면 이토록 짧은 기간에 해냈을지 자문해 본다. 좀 더 일찍 출범했다면 안전한 개인정보보호를 기반으로 한 데이터시대를 준비하는 발걸음이 더 경쾌하지 않을까하는 만시지탄의 아쉬움도 있다. 개인정보 보호는 그만큼 시대적 상황과 요구에 밀접하게 관련됐다.

디지털전환, 데이터 시대는 어느덧 성큼 다가와 있다. 상상에 불과하던 일을 직접 경험한다. 증강현실로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을 견뎌보기도 하고, 시간을 보여주도록 만들어진 기계가 내 건강과 활동 데이터를 기록 분석한다. 인공지능(AI)이 상담·진료하며, 작곡과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때로는 취업면접을, 내 취향에 꼭 맞는 서비스를 추천한다. 코로나19는 사회의 비대면화와 디지털전환을 가속화한다. 온라인쇼핑, 배달 앱 음식 주문, 온라인 수업·업무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뀐다. 디지털 기술은 시공간을 초월한다. 효율적이고 혁신적이며 무궁무진하게 확장한다. 반가운 변화다.

디지털 대전환은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문명사적 변화 속에서 우리가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 경제적 번영 이면에 나 자신보다 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더 정확하게 아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여기에 데이터 시대를 마주하는 개인정보위의 고민이 있다.

근대 문명은 어떤 가치도 인간의 근본적 자유, 존엄성과 맞바꿀 수 없다는 믿음에 기초한다. 자유는 그 자체로도 행복한 삶의 근본 요소다.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돼야 한다. '자유살해(Liberticide)'는 어떤 이유로도 용인할 수 없다.

데이터 시대에는 데이터가 가치 창출 촉매 역할을 한다. 경제적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데이터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인정보를 디지털기술로 대량 처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 과정에서 간과하기 쉽지만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이 프라이버시, 개인정보 보호다. 개인정보 보호는 디지털 시대에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지키는 기초다. 인류문명은 인간의 자유를 확장하고 존엄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발전해야 한다. 개인정보 보호가 없는 활용이 가능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디지털 시대에 맞는 인간 중심의 개인정보 보호 체계와 생태계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프라이버시 보호와 데이터 활용은 어떤 균형점을 찾을 수 있을까?

개인정보위는 국민과 함께 해답을 찾고자 한다. 전문가와 이해관계자가 모여 치열하게 고민하고 논의하는 공론 장을 이달 중 만들 계획이다. 디지털 시대의 미래를 향한 고민과 열정을 담는 취지에서 명칭을 '개인정보 미래포럼'으로 정했다.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으로 돌아가 국민과 소통하며 국민과 함께 디지털 사회의 미래를 준비한다. 많은 관심과 지원을 부탁한다. 급하다고 바늘허리에 실을 묶을 수는 없지 않은가. 바늘귀에 실을 제대로 끼워, 천의무봉의 디지털 시대를 함께 열어보자.

윤종인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lmj777@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