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핵심 키워드인 부품·소재산업의 기술 독립은 2019년 한일 무역분쟁으로 인해 더욱 집중 조명된 산업계 이슈다. 특히 이러한 이슈의 중심에 있는 소재산업 중 그래핀 분야는 수년째 ‘꿈의 신소재’로 화제가 된 데 반해 상용화는 다소 지지부진한 모습이다.

하지만 최근 그래핀 연구개발 및 관련업계에 유의미한 성과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9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KBSI) 이하진 박사(서울서부 센터장)가 고안한 ‘플레이크 그래핀의 전기적 특성 평가법’이 국제전기기술위원회(IEC) 국제표준으로 채택되는 등 성과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관련 산업의 현주소에 대한 궁금증도 커지고 있다.
그래핀 관련 기업군들의 움직임도 바빠지고 있다. 특히 소방차 등 특수차 제조업체에서 미래산업을 선도할 신소재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이엔플러스의 연구개발 노력은 더욱 돋보인다.

지난 55년간 재난안전 관련 사업분야를 영위해온 이엔플러스는 2020년 4월, 삼성SDI 출신 강태경 박사를 영입해 그래핀신소재연구팀을 전격 구성했다. 연구팀은 10개월여 기간 동안 연구개발에 매진한 끝에 전기차·스마트폰용 배터리, 방열 분야의 중간재 제품 개발을 완성함과 동시에 양산체제를 구축해 그래핀 소재의 국내 상용화에 가시적 성과를 예고하고 있다.
최근 전북 김제시에 위치한 이엔플러스 그래핀신소재연구소를 찾아 강태경 이사, 반용운 이사, 우종만 팀장 등 연구팀으로부터 그동안의 연구성과와 함께, 특허출원 및 품질 공인검증 중인 자체 개발한 신제품에 대해 자세히 들어보았다.
◇그래핀 연구 위해 전국토 종횡무진 ‘홍길동도 마다 않는다’
총 9명으로 구성된 이엔플러스 그래핀신소재연구팀은 관련분야 석사이상 비율만 78%를 이루는 소재R&D 분야의 석·박사집단이다. 특히 삼성SDI 출신 강태경 이사를 비롯, 타타대우상용차 출신 반용운 이사, 전기차 배터리 개발사 애너테크 출신 우종만 팀장 등 국내 배터리·자동차분야 내로라하는 대기업 출신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이 몸담았던 대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규모나 활약 범위가 다소 제한적일 수 있는 이엔플러스를 선택한 이유는 바로 ‘그래핀 상용화의 결실을 꼭 보고싶다’는 의지 때문이다.

연구팀을 이끄는 강태경 신소재사업본부 이사는 “40대에 목숨을 걸고 해볼 만한 도전이 뭐가 있을까 생각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바로 그래핀이었다. 제가 했던 다양한 경험을 토대로 그래핀이 더이상 꿈의 소재가 아닌 상용화 단계로서 접어들 수 있도록 용도를 찾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반용운 선행기술팀 이사는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자동차공학 설계를 연구했지만 전기차 핵심부품인 배터리에 늘 관심이 많았다. 강태경 박사와 이 부분에 대해 자주 소통하던 중 이엔플러스에 합류하게 됐다. 전기차산업에서 핵심인 배터리의 고용량, 무게 감량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을 찾고 싶다”고 말했다.
의욕적으로 출범한 이엔플러스 그래핀신소재연구팀의 발걸음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연구팀은 부족한 연구 장비를 찾아 대형 배터리 연구 및 생산 전문기업인 충북 충주 미디어테크(대표 김영환)를 비롯 전국 각지의 대학 연구소 등을 찾아다니며 힘들게 연구를 이어나갔고 2021년 3월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었다.

이엔플러스의 그래핀신소재사업본부를 총괄하는 강태경 이사는 “처음에는 그래핀을 연구한다니까 ‘사기꾼’이라는 말까지 들었다. 그래핀이 말 그대로 ‘꿈의 소재’로만 불리고 있었으니 그런 말이 나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강 이사는 또 “물론 어려움도 많았다. 주로 기성품을 다루던 회사가 나노단위의 소재를 다루는 사업으로 영역을 확대하는 것에 대해 내부반발도 있었고 연구장비 등 인프라가 턱없이 부족하기도 했다. 하지만 최고경영진의 신뢰와 지지로 내부 설득이 가능했고, 장비부족 문제는 저희 팀 인맥을 총동원해 전국 곳곳의 학교나 기업체를 찾아다니며 해결했다. 미디어테크 김영환 대표를 비롯한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가시적인 성과를 만들어내자 우리를 바라보는 시선들이 확 바뀌었다”라고 말했다.
우종만 신소재사업본부 팀장은 “연구장비를 찾아 전국 각지의 대학이나 기업에 찾아가서 장비를 대여해 연구를 진행하다 보니 팀원들이 밤낮이 바뀌기도 하는 등 다소 힘들어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만큼 보람을 느꼈고 가족들의 이해가 있었기에 마음 놓고 연구에 몰입할 수 있었다”라고 말했다.
◇‘액상형 그래핀 기반 배터리·방열 시제품’ 완성…신소재사업본부 성과

이엔플러스의 신소재 연구에는 관계사인 스탠다드그래핀이 개발한 GO·rGO 등 정제화된 그래핀 제품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특히 플레이크(가루형) 그래핀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액상형 그래핀 기술을 바탕으로 다양한 형태의 중간재들을 시제품화 해 생산하고 있다.
우종만 팀장은 “스탠다드그래핀의 제품을 사용하는 이유는 2가지다. 국내외 어느 곳과 비교하더라도 가장 정제된 수준의 그래핀이라는 점과 양산체제까지 고려할 때 충분한 양이 담보된다는 점이다”라고 평가하며 “액상 그래핀은 누구나 만들 수는 있지만 고품질의 재료를 생산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그래핀을 2차전지에 코팅했을 때 벗겨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 관건이다. 최적화된 단계를 마련하기 위해 연구원들과 24시간 맞교대 형태로 쉬지 않고 일하며 수백 번 연구시험을 거듭했고 적정 비율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엔플러스의 그래핀 중간재 시제품은 전기차용 2차전지(배터리) 도전재와 커버, 스마트폰·TV 방열소재 등이 있다.

먼저 2차 전지 중간재의 경우 배터리를 이루는 각 셀들의 전력 전도율을 최대한 정제화된 수준으로 조율한 단계까지 이르렀으며 해외시판까지 검토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의 핵심쟁점이라 할 주행거리와 배터리 용량은 물론 배터리 수명, 안정화 등에도 기여하는 바가 클 것으로 기대된다.
강태경 이사는 “우리가 개발한 시제품이 기존 제품군보다 도전재로서의 기술적 수준은 확실히 높다. 배터리를 이루는 각 셀의 전도율을 조율하면서 안정적인 전력공급이 가능한 형태로 배터리 품질 수준을 확 끌어올린 것”이라며 “현재 자체인증을 거쳐 공인인증을 받기 위해 미디어테크 코팅 및 조립 장비를 이용하여 배터리 셀로 개발 대기 중이다. 고객들의 다양한 수요에 맞출 수 있도록 기초적인 개발/제조/양산 프로세스를 갖춰나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방열분야의 성과는 더욱 돋보인다. 특히 현대인의 필수품인 스마트폰의 방열소재로는 이미 국내외 기업들의 수요에 맞게 시판제품을 제작중이며, 더욱 까다로운 고객들의 요구조건을 충족하기 위한 막바지 연구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강 이사는 “방열분야 중간재는 전체 프로세스의 90% 정도 완료됐다고 할 수 있다. 유해물질 테스트는 물론이고 양산성을 충족하기 위한 공정 프로세스 협의도 완료된 상황”이라며 “고성능 소재와 방수·내연성을 갖춘 방열소재 등 두 가지 방향의 그래핀 방열소재와 함께 전기차 배터리 방열커버 개발도 거의 완료된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방열쪽 시제품은 자체 검증에 이어 공인검증까지 진행 중이다. 지난해 말 반도체용 패키지에 사용되는 EMC 테스트를 완료했고, 자동차용 헤드램프에 쓰일 투명막 용액도 완성단계에 있다. 이같은 연구 성과를 지난해 6월 국회의원-학계 교수 초청 워크숍을 통해 알리기도 했다”라고 말했다.
◇정부·기업, 분명한 방향성 갖고 그래핀 상용화 추진해야
IT산업 분야에 꼭 필요한 중간재 개발로 그래핀 상용화에 앞장서고 있는 이엔플러스 그래핀신소재연구팀. 최근 스마트 디바이스 발열량, 그래핀 상용화 대책 등 소재관련 국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이들은 전문적인 기술능력과 함께 현장에서 체득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최근 제기되 이슈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건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우선 스마트디바이스 발열량 이슈에 대해서는 기술적 특성과 함께, 그래핀 기반의 방열소재들의 적층에 대한 연구 노력을 지속할 것임을 시사했다.
강태경 이사는 “5G 통신용 AP칩을 비롯한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기본 반도체 부품의 한계 온도는 최대 90도(150도)로 설계되지만, 일반적으로는 순간온도나 지속온도(2시간) 측면에서 60~70도(90도)가 기준이다. 최근 디바이스 특성상 방수나 블루투스 등의 기능 추가로 인해 점차 스마트폰 내부 환기구가 사라져 반도체 열 환기가 어려운 추세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들이 펼쳐지고 있는데 관건은 얼마나 기술적으로 적층을 잘 하느냐에 달렸다. TV나 스마트폰에는 두께 200~350마이크론 수준의 방열소재가 필요하지만, 기본적으로 높은 열전도율을 가지고 있는 방열소재는 두께 40마이크론 수준이기에 이를 쌓아나가는 데 기본적인 방열해법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그래핀 소재의 상용화 대책에 있어서는 정부와 기업, 고객 3자가 공동으로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입 모아 강조했다.
“정부는 정부과제나 정책 지원을 해줄 때 타깃을 명확히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기업도 만병통치약 격이 아닌, 특정업군과 제품 등 세일즈 포인트를 명확히 해서 상용화 단계의 기준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산업별 수요와 기술 방향성을 제대로 파악하면 상용화 방향성은 충분하다. 아직은 그래핀 중간재 부품의 가격대가 다소 비싸다고 느낄 수 있지만, 과거 CNT(카본 나노튜브)가 그러했듯 정부와 기업, 고객 3개 주체가 합심해 그래핀 대량 양산 체제 지원과 상용화 단계를 높여나간다면 우리도 그래핀 소재 선진국이 될 수 있으리라 본다.”

마지막으로 ‘꿈의 신소재’그래핀을 실제 ‘세상에서 통하는 물질’로 만들겠다는 야심찬 각오도 밝혔다.
“그래핀 상용화에 있어 저희보다 잘하고 있는 곳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저희는 IT산업 분야라는 특화된 분야에서 고품질의 그래핀을 응용 한 소재, 부품 상용화를 위해 노력해왔고 이제 분명한 성과를 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배터리·차체·내장재 등 그래핀으로 도배된 차량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서 실제로 굴러가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한편 이엔플러스는 지난 16일 사모전환 사채 발행 결정을 공시하고 이차전지, 방열 등 그래핀 신소재 시설 투자에 50억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밝혔다.
전자신문인터넷 박동선 기자 (ds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