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식품사에 거대한 발자취....故 신춘호 회장 어록

신춘호 농심 회장
신춘호 농심 회장

농심 창업주인 '라면왕' 신춘호 회장이 27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농심은 신 회장이 이날 오전 3시 38분 지병으로 별세했다고 밝혔다. 신 회장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경영 일선을 진두지휘하며 활발한 기업활동을 이어 온 식품업계 대표 창업주로 꼽힌다.

한 평생을 라면 사업을 일군 신 회장은 반세기 한국 식품 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겼다.

1965년 회사를 설립한 신 회장은 당시 “한국에서의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한다. 이런 제품이라면 우리의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범국가적인 혼분식 장려운동도 있으니 사업전망도 밝다”며 라면 시장에 진출했다.

그는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평소 “다른 것은 몰라도 연구개발 역량 경쟁에서 절대 뒤지지 말라”고 강조해온 데 따른 것이다. 1971년 새우깡 개발 당시에도 “맨땅에서 시작하자니 우리 기술진이 힘들겠지만, 우리 손으로 개발한 기술은 고스란히 우리의 지적재산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했다.

농심의 간판 제품인 '신라면'과 '짜파게티', '옥수수깡' 등 제품명을 직접 지은 일화도 유명하다.

1986년 신라면을 출시할 때 신 회장은 “저의 성(姓)을 이용해 라면 팔아보자는 게 아닙니다. 매우니까 간결하게 '매울 辛'으로 하자는 것”이라며 신라면을 내놨고 현재까지도 신라면은 농심의 주력제품이다.

신춘호 회장이 브랜드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1970년 '짜장면'의 실패에서였다. 유명 조리장을 초빙해 요리법을 배우고 7개월간의 개발 기간을 거쳐 내놓은 국내 최초 짜장라면 '짜장면'은 출시 초기 소위 대박이 났다.

하지만 비슷한 이름으로 급조된 미투제품의 낮은 품질에 불만을 느낀 소비자들은 짜장라면 전체를 외면하기 시작했고 결국 농심의 짜장면도 사라지게 됐다. 당시 신춘호회장은 “제품의 품질도 중요하지만 모방할 수 없는 브랜드로 확실한 차별화 전략이 중요하다”고 깨닫는다.

반세기 식품사에 거대한 발자취....故 신춘호 회장 어록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춘호회장의 천재성이 묻어난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옥수수깡이다. 신춘호회장은 “원재료를 강조한 새우깡이나, 감자깡, 고구마깡 등이 있고, 이 제품도 다르지 않으니 옥수수깡이 좋겠다”고 했다. 옥수수깡은 2020년 10월 출시됐고 품절대란을 일으킬 만큼 화제가 됐었다.

농심이 라면을 처음 수출한 것은 창업 6년만인 1971년부터다. 지금은 세계 100여개국에 농심이 만든 라면을 공급하고 있다. 유럽의 최고봉에서 남미의 최남단까지다. 농심은 지난해 사상 최대인 9억9000만불의 해외매출을 기록했다.

신 회장은 “농심 브랜드를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 얼큰한 맛을 순화시키지도 말고 포장디자인도 바꾸지 말자. 최고의 품질인 만큼 프리미엄의 이미지를 확보하자. 한국의 맛을 온전히 세계에 전하는 것”이라며 수출 확대를 추진해왔다.

2011년 출시한 프리미엄라면 신라면블랙은 규제와 생산중단의 역경을 딛고 지난해 뉴욕타임즈가 꼽은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올랐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