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큰 별이 떨어졌다.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91)이 27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56년간 농심을 이끌며 굴지의 식품기업으로 키운 신 회장은 '신라면' 등 대표 제품을 만들며 국내 식품사에 한 획을 그은 인물이다.
故 신춘호 회장은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 중 셋째 아들이다.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그는 “한국에서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한다며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춘호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
신 회장은 1992년까지 대표이사 사장을 맡다가 농심이 그룹 체제로 전환하면서 그룹 회장직을 맡아왔고 최근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났다. 지난 25일 주총에서 신동원 부회장과 박준 부회장, 이영진 부사장이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신 회장은 일찌감치 승계작업을 마쳤다. 남은 재산은 농심 주식 지분 5.75%와 율촌화학 지분 13.5%로 약 1650억원 정도다.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을 중심으로 농심그룹을 이끌며 동생인 신동윤·동익 형제는 각각 율촌화학, 메가마트를 맡았다.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은 현재 농심그룹 지주회사인 농심홀딩스 지분 42.92%를 삼남인 신동익 메가마트 부회장도 메가마트 지분 56.14%를 보유하며 사실상 계열분리를 마쳤다.
차남 신동윤 율촌화학 대표이사 부회장이 지분 13.93%를 보유한 율촌화학은 조만간 계열분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율촌화학은 농심홀딩스가 31.94%, 신춘호 회장이 13.5%를 갖고 있다.
그 동안 계열 분리 추이를 볼 때 신 회장이 보유해 온 율촌화학 지분은 차남인 신동윤 부회장에게 전량 상속될 가능성이 높다. 신 회장의 상속분을 더하면 신 부회장의 율촌화학 지분은 27.43%이며 향후 신 부회장이 갖고 있는 농심홀딩스 지분(13.18%)을 활용해 지분율을 높일 것으로 점쳐진다.
이는 신 회장의 마지막 유훈에도 엿볼 수 있다. 신 회장은 유족에게 '가족간에 우애하라', 임직원에게는 '거짓없는 최고의 품질로 세계속의 농심을 키워라'는 당부의 말을 남겼다.
신 회장이 보유하던 주택도 증여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대지면적 818.5㎡ 규모 서울 용산구 한남동 단독주택을 딸인 신현주 농심기획 부회장에게 증여했다.
농심 관계자는 “농심홀딩스 신설 당시부터 후계를 염두에 뒀고 사실상 승계작업은 끝났다”면서 “재산 상속 이후에도 농심 경영권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편 신춘호 회장은 별세하기 전 서울대 병원에 10억원을 기부했다. 고인은 오랫동안 치료해온 의료진과 병원 측에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기부했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