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한 스타트업 피인수 과정 자문에 응했다. 인수자는 미국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이었다. 인수합병(M&A)의 구체적 조건을 놓고 치열한 밀고 당기기가 진행됐다. 지식재산권 평가를 두고 이견이 좁혀지지 않았다. 협상 미팅은 처음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횟수로, 예정된 기간을 넘기며 열렸다.
시간이 지나며 클라이언트 표정이 점점 어두워졌다. 급기야 회사 경영진 회의가 소집됐다. 최고경영자(CEO)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변호사님, 협상을 너무 어렵게 푸는 것 아닙니까? 세부적 부분에 지나치게 집착해 협상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소한 쟁점에 대해선 통 크게 양보하고 일괄 타결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요?”
스타트업 경영진에게는 내가 협상을 이끌어 가는 모습이 몹시 쪼잔해 보인 모양이었다. 한국과 미국 기업의 문화 차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오해였다. 나는 스타트업 경영진이 지엽적 문제라고 본 부분이 나중에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에 대해, 특히 경제적 파생 효과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러자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협상 기조에 신뢰를 보여 줬다.
나는 한국 기업의 지식재산권(intellectual property rights) 관련 협상 자문에 응하며 번번이 이런 상황에 부닥쳐야 했다. 한국 기업가들은 대체로 시원시원하다. 화통하고 대범하다. 이런 성향은 복잡다단하고 험난한 비즈니스 세계를 헤쳐 나가는 데 큰 장점이 된다. 그런데 이 성향이 구체적 실무 추진이나 협상, 법률문제 등으로까지 그대로 이어진다면 심각한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세부적 현안에 대해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한국식 비즈니스 풍토는 어떻게 형성됐을까. 우선 문화적 환경과 관련이 깊다. 한국 리더들은 사소한 현안에 대해 꼬치꼬치 질문하거나 이의를 내는 것을 '좀스럽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법률 기능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곤 한다. 내 이익을 보호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려 하기보다는 가능한 한 회피하려 한다.
협상 과정에서 인내심 또한 부족하다. 현재 상황을 천재일우(千載一遇)라고 오판하거나 단기 성과주의에 매몰돼 설정한 시한을 넘기지 않으려고 애쓴다. 그러면서 무리수를 두곤 한다.
현실적 문제도 있다. 협상이 길어지거나 난맥상에 빠지면 버틸 힘이 얼마 남지 않게 되는 것이다. 사내 현금 흐름, 인력 배치, 투자자 대상과의 약속 등을 특정 시점에서 협상이 완료됨을 전제로 진행하곤 한다. 그래서 타결 그 자체에 매달린다. 그러면 협상에서 불리해지기 마련이다. 군사 전략상 '배수의 진'은 최악의 상황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구축하는 것이다. 보통의 경우라면 스스로 불리한 상황에 빠질 필요가 없다.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이 대기업 상대로 협상할 때, 한국 기업이 미국이나 유럽 기업과 협상할 때 디테일의 가치를 망각하고 타결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조급함이 자주 나타난다. 이런 때는 극적 타결을 이뤘다 해도 실제 성과는 미미하고, 차후 예기치 않는 난관에 빠질 여지를 남겨 두게 될 수 있다.
큰일을 도모할 때는 원대한 비전을 품고 중후장대(重厚長大)한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렇다 해서 디테일을 포기해선 안 된다. 세부적 현안을 꼼꼼하게 살피고, 그 하나하나에 집요하게 매달려야 한다. 발생 가능성이 있는 모든 시나리오에 일일이 대응해야 한다.
불행하게도 이런 역량은 쉽게 축적되지 않는다. 그래서 세심한 지원이 필요하다. 업종 단체, 지방자치단체, 중앙정부 차원에서 이를 뒷받침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본다. 안타깝게도 국가 산업단지 등에 비즈니스 협상이나 법률 문제 검토를 지원하는 기구가 마련된 곳이 드문 현실이다.
고도화돼 수많은 변수가 난무하는 지식 기반 산업에서 글로벌 문화 이해에 바탕을 둔 협상 전략 수립과 실행, 국제적 법률 검토와 대응책 마련 등을 세심하게 지원하는 등 디테일의 힘을 발휘해 줄 지원 체계 마련을 제안한다.
장준환 충북대 겸임교수·변호사 jchang@changcholaw.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