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양한 방법으로 세상과 만물을 규명한다. 그리고 이런 규명은 우리 지식 수준의 향상, 기술의 발전으로 숱하게 변화한다. 기존 것이 부정당하고, 보다 새롭고 정확한 설명이 태어나길 반복한다.
이번에는 특히 의미 있는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세상의 특정 요소가 아닌, 세상 전체를 다시 설명해야 할 정도다. 벌써부터 학계가 떠들썩하다. 미국 페르미 연구소가 국제공동연구로 진행, 지난 8일(한국시간) 발표한 '뮤온 g-2' 실험 첫 결과 때문이다.
입자물리학에서는 '기본입자'와 '표준모형'을 활용해 물질세계 구성을 설명하고 있다. 이 가운데 기본입자는 자연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입자를 뜻한다.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자연의 기본 단위다.
이들 기본입자로 세상을 설명하는 틀이 현대물리학의 정수인 표준모형이다. 렙톤(경입자) 6개 및 쿼크 6개, 또 이들을 매개하는 게이지 보손 4개, 2012년 발견된 힉스 입자까지 총 17개 입자의 상호작용을 다룬다.
표준모형으로 세상이 어떻게 구성되는지 아주 미시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에서부터 설명할 수 있다. 사실상 세상의 모든 것을 설명한다. '미시'가 없다면 '거시'도 없다.
그런데 이번 국제공동연구에서 기존 표준모형의 틀을 뒤흔드는 결과가 나왔다. 렙톤에 속해 있는 '뮤온'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뮤온은 강력한 자기장 아래 자석의 축이 마치 팽이처럼 흔들리는데, 이런 흔들림을 'g 값'으로 표현한다. 실험에서는 매우 적은 수치지만 기존 표준모형 기반 예측과 차이를 보였다. 학자들은 기존 표준모형에 속하지 않은, 우리가 기존에 알지 못한 입자가 이런 차이를 이끌어낸 것으로 보고 있다. 새로운 기본입자의 존재, 기존 표준모형을 새로 뜯어 고쳐야 할 가능성을 내포한 실험 결과가 나온 것이다.
물론 아직 명백한 과학적 발견으로 보기는 어렵다. 실험 신뢰도 척도인 '시그마' 기준 4.2다. 통상 5 시그마(99.99994%) 이상부터 명백한 발견으로 인정된다. 다만 지금도 오차 확률이 거의 없는데다, 4차 실험까지 진행되고 있어 끝내 새로운 발견을 이룰 수 있을 전망이다. 현재까지 분석한 실험 데이터는 전체 6%에 불과하다. 이미 흥미로운 지점을 찾은 만큼, 더 많은 성과가 예상된다.
실제 발견이 이뤄지면 그 파장은 이루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크다. 과거 세계를 들뜨게 한 힉스 입자 발견 당시보다 더 큰 발견이다. 힉스 입자는 발견이 늦어졌을 뿐 그 존재는 표준모형 구축 당시부터 예견됐던 것이다. 뮤온 g-2 실험으로 가늠하고자 하는 입자는 전혀 새로운 것으로 예견도 없었다. 학계가 유독 흥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번 연구에는 우리나라 연구 인력도 포함돼 이목을 끈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도 참여했다. 특히 실험장비를 개선하고 오차를 줄이는 데 큰 보탬이 됐다.
뮤온 g-2 실험에는 입자를 원형 링 안에서 회전시키고 측정하는 '뮤온 저장고리'를 활용한다. 뮤온의 진동을 제거하는 것이 오차를 줄이는 것에 주요한데, IBS가 이를 위한 설비를 설계·제작했다.
이명재 IBS 액시온 및 극한상호작용 연구단 연구위원은 “이번 연구는 결과에 따라 표준모형을 수정하게 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틀을 변화시키는 가능성을 지닌 매우 중요한 것”이라며 “올해분 실험 데이터에 IBS의 실험설비가 적용돼 우리나라의 기여 역시 크다”고 말했다.
대전=김영준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