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화의 목적은 기술 공유와 확산이다. 그러나 글로벌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도구이자 경쟁자의 신규 진입을 가로막는 장벽으로도 작용한다.
표준화를 둘러싼 환경은 급변해 왔다. 과거 산업화 시대에는 제품 구조, 성능, 시험 방법 등을 규정해 생산비용을 절감하고 규격화된 제품을 생산해서 제품 간 호환성을 확보하는 것이 표준화의 주요 목적이었다. 최근에는 기업과 국가 경쟁력을 제공하고 시장을 지배하는 수단으로 표준화의 목적과 역할이 바뀌고 있다. 표준화를 통해 시장을 개척해서 선점하거나 표준 특허를 이용해 세계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면서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표준화 정책 또한 바뀌어 왔다. 우리나라는 1961년 산업표준화법 제정 이래 국가 주도로 표준을 제정하고 기업이 이를 수용하는 하향식 표준화를 국가 정책으로 채택하다가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민간이 주축이 돼 산업계 보유 기술을 국가표준 또는 국제표준으로 제정해 나가는 상향식 표준화 제도가 도입됐다.
상향식 표준화는 민간 표준화 활동을 유도, 다양한 산업계 기술을 표준화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민간 부문의 표준화 역량을 강화하고 표준 수요에 더욱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한 표준개발협력기관(COSD) 제도 역시 도입됐다. 전자문서 산업을 포함한 산업계 각 분야에서 국가표준제정, 국제표준 국내 부합화 등 활발한 표준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전자문서 분야의 국제표준화를 담당하는 국제표준화기구(ISO) 기술위원회(TC)의 한국 활동은 다음과 같다.
ISO/TC 171은 마이크로그래픽 또는 전자문서 형태의 문서관리 응용 분야 표준화를 담당하는 ISO 기술위원회다. 문서 생산과 색인·저장·검색·배포, 의사소통·프레젠테이션·마이그레이션·교환·보존과 진본성 유지·폐기에 관한 표준 및 지침을 제공한다. 현재 한국은 이 기술위원회 내에 데이터 활용을 위한 정형문서 표준화를 다루는 신규 분과위원회(SC) 설립 제안을 추진하고 있다.
ISO/TC 46/SC 11은 문서·기록 관리, 기록경영에 관한 표준화를 담당하는 기술위원회다. 비즈니스 활동에 대해 권위가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및 증거를 제공하기 위해 기록 관행과 프로세스 설계, 적용을 위한 관리 프레임워크와 표준·지침 제공을 목표로 한다. 한국은 기록 시스템 설계를 다루는 WG16 의장직을 수임하고 블록체인 기반 기록관리 표준화(ISO/WD TR 24332), 클라우드 기반 기록관리 표준화(ISO/TR 22428-1, ISO/PWI TR 22428-2) 프로젝트 리더로 활동하고 있다.
ISO/TC 154는 전자문서와 전자거래, 프로세스, 데이터 식별 관련 표준화를 담당하는 기술위원회다. 전자문서교환(EDI)을 포함해 정보통신기술(ICT) 환경에서 조직 간 시스템 상호 호환성을 유지하기 위한 프로세스, 데이터 요소, 문서 등 표준화 제공이 목표다. 한국은 신뢰 커뮤니케이션 표준화를 다루는 WG6 의장직을 수임하면서 신뢰 모바일 전자문서 프레임워크 표준화(ISO 20415), 신뢰 커뮤니케이션 플랫폼 표준화(ISO 19626-1, ISO 19626-2, ISO/PWI TR 19626-3) 프로젝트 리더로도 활동하고 있다.
전자문서는 디지털 시대 핵심 콘텐츠이며, 데이터 활용 전제 조건으로 진화하고 있다. 신기술 분야일수록 표준화 경쟁은 치열하다. 타 국가의 기술 표준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선제적이며 적극적인 표준화 활동과 선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산업계의 관심과 참여가 이뤄져야 한다.
전자문서 관련 3개 ISO 기술위원회 국내전문위원회에서는 산업계 신규 국제표준화 제안, 표준 개발과 제정, 국제회의 참가 등 표준화 활동 참여를 지원하고 있다. 전자문서와 전자기록 분야 표준개발협력기관은 표준 관련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민간 부문 전자문서 표준화 역량을 강화하고, 의견 수렴 등을 통해 표준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전자문서 산업계를 포함한 산업별 전문가 참여로 전자문서 표준화에 대한 우리 위상을 높이기를 기대해 본다.
김성규 한국전자문서산업협회장 gform@epostop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