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윤성 SF 문학상]김초엽 "입체적 인물 조형 매우 인상적...세계의 뒷면 드러낸 성공적 SF"

김초엽 작가
김초엽 작가

김초엽 심사위원장(작가)

본심에서는 '지금, 여기, 우리, 에코'와 '서든 키즈' '궁극의 인간, 호모 울티무스' 세 작품을 주로 살폈고, 논의 끝에 대상작으로 '지금, 여기, 우리, 에코'를 선정했다.

'궁극의 인간, 호모 울티무스'는 하나의 SF적 장치가 만들어 낸 변화한 세계를 다루는 이야기로, 세계의 세밀화를 한 장면씩 스케치하듯 그려내는 작가의 능력이 돋보였다.

SF의 정석적인 재미인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즐거움'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다만 주요 설정이 특정 대사들을 통해 너무 설명조로 전달되고, 중반부터 이야기가 늘어지는 느낌이 있어 좀 더 속도감 있게 전개되었으면 좋았으리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서든 키즈'는 마지막까지 대상을 두고 고민했던 작품이었다. '갑자기 이 세계에 존재하게 된 아이들'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알게 된 순간부터 이야기에 완전히 몰입하여 읽어나갔다. 시간여행과 평행우주라는 흔히 다뤄진 소재를 작가만의 방식으로 잘 변주하면서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담아낸 완성도 높은 작품이었다.

앞서 복잡하게 제시되었던 문제가 다소 평이하게 해결되는 결말이 큰 단점으로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한 감정적 울림을 선사하는 작품으로, 아쉽게도 대상작으로는 선정하지 못했지만 언젠가 다른 자리에서도 빛을 보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지금, 여기, 우리, 에코'는 '학당'이라는 가상현실 교육 시스템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10대 인물들의 성장 서사를 다룬 경쾌한 소설이다. 각각 개성을 지니고 살아있는 듯 생생하게 행동하고 말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지니면서도 정체성만으로 환원되지 않는 입체적인 인물 조형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비밀의 방, 유령 출몰 등 초자연적 소재를 SF적 설정과 잘 연결하며 이야기를 이끌고 나가고, 기술을 통한 격리와 배제에 대한 문제의식을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허를 찌르는 듯한, 서늘하고 아름다운 결말의 장면 역시 좋았다.

전개상 다소 급하게 느껴지거나 시점이 흔들리는 부분 등 아쉬움으로 느껴지는 부분도 독창성의 일부로 여겨질 만큼 매력적인 작품이었다.

뛰어난 SF는 현실을 기울이고, 다른 각도로 접고, 세계의 가려진 뒷면을 드러내 독자의 인지적 확장을 유도하는데 그러한 기준에서도 '지금, 여기, 우리, 에코'는 지금 우리의 현실을 달리 바라보게 만드는 SF로서 성공적이다.

민규동 감독
민규동 감독

민규동 심사위원(영화감독)

SF문학상 심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SF이면서도 문학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을 동시에 만족시키는 이야기를 찾는 것이었다.

탁월한 과학적 설정에 감탄하다가 거친 문장에 걸려 넘어지기도 하고, 부드러운 문장에 빨려 들어갔지만 익숙한 화두에 갇혀 버리기 일쑤였다.

'지금, 여기, 우리, 에코'는 섬세하게 세공된 글을 삼키고 씹어보는 원초적인 소설의 맛과 함께 SF가 그려주는 새로운 세계의 묘한 멋이 이음선 없이 속 깊이 포개져 있었다.

또한 근미래의 시공간이 한국과 결합되면서 종종 이식된 번역물 느낌을 주는 글들이 있는 반면,

이 작품에서 다루는 모던한 세계는 우리 현실의 땅바닥을 사뿐히 딛고 선 경쾌한 리얼리티의 밀착감을 선보였다.

더욱이 인물들의 성별, 말과 행동 모두 사려 깊게 골라져 있어 상당히 올바르다는 인상을 주는데, 반면 교조적인 강박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장애를 일상적으로 대하는 시선에서도 남다른 성찰의 면목이 보였다. 같은 학원청춘물인 '서든 키즈'와 함께 다른 장점을 놓고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고, 그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도 아주 컸다.

이다혜 작가
이다혜 작가

이다혜 심사위원(작가)

제1회 문윤성 SF문학상에서 한국 SF작가들의 개성 있고 흡인력 있는 소설을 여럿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을 비롯한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세계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작가 저마다의 해석이 드넓은 공간과 시간을 배경으로 한 새로운 이야기를 통해 해석되고 재배열되었으며, 생동감 있는 캐릭터를 통해 미지의 영역을 탐구하는 일은 즐거운 독서로 이어졌다. 여성, 난민, 장애를 비롯한 여러 사회 이슈들은 때로 유머러스하게, 때로 공포나 스릴러와 같은 다른 장르와 연계되어 제시되었으며, SF 장르 안에서 소화되었다.

대상 수상작 '지금, 여기, 우리, 에코'는 가상현실 학교 '학당'을 무대로 한다. 증강현실 장치를 이용한 게임에서 목격되는 유령의 정체를 밝히기 위한 시도는 '학당'의 시간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고, 기술이 발전해도 해결되지 않는 소수자 배제라는 이슈와 맞서려는 학생들의 이야기는 학원물의 경쾌한 톤과 어우러지면서 슬픔과 기쁨을 적절히 조율해냈다.

가상현실이라는 기술이 장애를 가진 인물들에게 어떻게 새로운 가능성을 선사할지, 기술 발전의 동력으로서 인간의 감정은 무엇까지 가능하게 할지를 매력적인 캐릭터들의 조화를 통해 표현해낸 작품으로 심사위원들의 고른 호평을 받았다.

'서든 키즈-너로부터 시작된 세계'에 대한 호평도 아껴서는 안 될 것 같다. 1990년생 여학생들을 중심으로 열여덟 살 아이들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진 2007년을 배경으로, 여아 선별 낙태와 우생학을 소재로 한 타임슬립물이다.

과거를 바꾸기 위해 노력하면 현재 역시 바뀔 수밖에 없다. 기억할 만한 캐릭터와 SF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세계를 재배열하는 작품인데, 과거와 현재의 존재들이 계속해서 상대편에 영향을 미치는 후반부의 전개가 개연성 면에서 의문점을 남겼다.

'궁극의 인간, 호모 울티무스'는 판타지적인 설정을 바탕으로 다음 전개를 계속 궁금해하게 하는 힘을 지녔다. '오디티'는 우주 정거장에서 벌어지는 일인데도 고대 설화, 요괴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설정과 전개로 눈길을 끌었다.

정리=

김용주기자 kyj@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