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초유의 사태에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이 머리를 숙였다. 대리점 갑질 사태로 대국민 사과를 했을 당시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홍 회장이 회장직 사퇴와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모든 것에 책임을 지기 위해 물러난다는 홍 회장의 사과는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것이라는 여론이 많다. 그러나 대국민 사과 이후 남양유업의 후속 조치는 또 한 번 비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남양유업은 후속 조치로 비상대책위원회 중심으로 경영 체제를 전환하고 정재연 세종공장장(부장)을 위원장으로 내세웠다.
홍 회장과 함께 사의를 표명한 이광범 대표는 후임 경영인 선정까지 대표직을 유지하기로 했다. 최근 홍 회장은 서울 도산공원 인근에 위치한 본사 사옥 내 집무실을 비웠지만 이 대표는 회사에 남은 상황이다.
이 대표는 요직을 두루 거치며 28년 동안 남양유업에 재직한 인물로, 내부에선 '실세'로 불린다. 남양유업의 흥망성쇠를 누구보다 많이 함께했고, 그에 대한 책임도 남다르다. 대리점주들이 '불가리스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퇴를 요구한 대상도 이 대표였다.
'실세'라 불리는 전임 최고경영자(CEO)가 건재한 상황에서 부장급 위원장이 추진하는 쇄신 작업은 가능할 수 있을까. 이 대표를 대신해서 홍 회장이 물러난 것처럼 비치는 이유다.
경영권 승계를 하지 않겠다면서도 장남인 홍진석 상무가 사임하지 않고 보직 해임된 점도 있다. 홍 상무는 회삿돈으로 고가의 외제 자동차를 사적으로 유용했다며 배임 논란에 따라 보직 해임됐다.
이사회 쇄신 여부에 대한 언급도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남양유업 이사회는 모두 6명으로 구성됐다. 이 가운데 홍 회장과 어머니 지송죽 여사, 장남 홍진석 상무, 이광범 대표 등 4명이 사내이사이다.
갑작스러운 대국민 사과 이후 10여일 만에 완벽한 후속 조치를 기대하긴 어렵다. 부족한 점은 메우면 될 일이다. 다만 모자란 결정은 더 이상 내리지 않아야 한다.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 온 직원과 대리점들에 남은 희망까지 사라지지 않길 기대해 본다.
박효주기자 phj20@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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