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는 '신의 한 수'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해외 메이저 컨테이너 선사들은 고효율 대형선을 확보하는데 집중한 반면에 우리 선사(한진, 현대)들은 유동성 해결을 위해 자산 매각과 빚 갚는데 치중했다. 그 결과 2017년 초 세계 7위, 국내 1위이던 한진해운은 '물류 대란'이라는 오명을 남기고 청산됐고, 규모가 작은 현대상선이 고군분투했다.

한국해운협회는 컨테이너업계의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2016년부터 현대-한진의 양대 원양 컨테이너선사를 통합하고 근해 선사들을 구조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당국에 제시했다. 특히 신조 지원프로그램을 활용, 정부가 대형 컨테이너선박 신조를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2017년 정권 교체 이후 새 정부가 해운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해운재건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상황은 급반전됐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설립되고, 해운 재건의 신호탄이 쏘아졌다.

그 과정에서 어려움도 많았다. 해양수산부가 HMM(옛 현대상선) 경쟁력 강화를 위해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를 추진했지만 정책금융기관 등의 반대에 직면했다.

국내외 반대 목소리도 컸다. 특히 2018년 유럽의회(통상위원회)는 HMM 중심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발주 지원에 대해 정부 보조금과 같은 불공정 경쟁 조치이고, 심각한 공급 과잉을 초래해 해운·조선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반발했다. 또 자유로운 해상운송 시장을 저해하는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정부와 협회에 항의서한까지 보냈다. 2018년 2월 23일 개최된 한·덴마크 양자 해운회담에서는 덴마크 통상산업부 장관이 노골적으로 불만을 피력했다. 또 같은 해 덴마크 해운사 머스크의 아시아본부장은 우리 협회를 수차례 방문, HMM의 20척 발주를 경고하는 등 견제했다.

당시 유럽의 이 같은 움직임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유럽 글로벌 선사들은 2008~2018년 10여년 동안 320여척, 308만TEU나 되는 엄청난 규모의 선박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우리 선사들의 신조 발주를 막기 위한 '프로파간다'였다.

국내 메이저 언론들까지 동조했다. 'HMM의 20척 발주로는 해운업 경쟁력 확보가 어렵다' '지속 가능성 없는 조치다' '큰 배에 화물을 다 채울 수 없다'는 등의 의문을 제기했다.

그러나 해수부 장·차관과 실무 국·과장들은 관계 당국을 적극 설득하며 결국 HMM에 대한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 결정을 끌어냈다. 그때 위기 극복은 '신의 한 수'가 됐다. 2020년 2분기 이후 예상과 달리 미주를 비롯한 유럽 물동량이 폭증하면서 선복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이를 예견이라도 한 듯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이 속속 노선에 투입됐고, 국내 수출입화물을 실어 나를 수 있게 됐다. HMM은 지난 2020년 한 해에만 1조원 규모의 흑자를 기록했고, 올해 3조원 이상의 흑자가 예상된다. 만선 행진과 선복 부족은 지속되고 있다.

정부가 만약 국내외 반대에 휘둘려 20척 신조 발주를 미뤘다면 수출은 마비되고 국가경제는 심각한 위기에 처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초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물동량이 급감하던 상황에서 HMM의 초대형 컨테이너선 20척 발주 1호선인 알헤시라스호 명명식에 참석해 “해운 강국은 포기할 수 없는 대한민국의 미래이며, 해운 산업은 우리의 효자산업으로서 해운 재건을 반드시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 언급대로 현재 해운업계는 국내 수출업체들의 화물 운송을 적극 지원하며 '효자 산업'임을 입증하고 있다. 앞으로도 해운업이 국가경제에 이바지하고 국민들은 우리 해운업에 대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운업계는 재도약에 총력을 다할 것이다.

김영무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Ymkim@oneks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