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사에서 21세기 전반부는 20세기 전반부에 못지않은 격변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 1900년대 전반부가 2차 산업혁명 및 스페인독감·대공황과 두 차례 세계대전으로 강렬하게 기억된다면 현재 인류는 4차 산업혁명 및 코로나19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 정체와 경제·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격변에 휘말려 있기 때문이다.
클라우스 슈바프 세계경제포럼(WEF) 회장은 “역사적으로 거대한 위기가 발생할 때마다 인류사회는 큰 변화의 과정을 거쳤고, 그 변화를 기초로 새로운 경제 시장이 조성되고 더 큰 발전을 거듭해 왔다”고 분석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격변이 새로운 '위대한 재편(Reset)' 시대로 인류를 이끌고 있다고 말한다.
WEF가 주창하는 위대한 재편에는 경제·사회·환경·기술 재편뿐만 아니라 개인 재편도 포함된다. 이에 더해 과학기술 관점에서 위대한 재편을 추진하는 방법으로 4차 산업혁명에 주목하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선도를 위한 효과적 두 가지 방법이 바로 '지능화'와 '융합'을 통해 우리 국가 시스템을 대전환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능화는 'DNA'(데이터, 네트워크, 인공지능) 기반으로 하여 전환적으로 대응 효율을 높이는 혁신이다. 융합은 코로나19와 같은 새로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응 방식을 다양화하는 혁신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국가 혁신시스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출연연)들은 어떻게 융합연구를 활성화해야 할까.
첫째 우리나라의 인접 분야 간 융합연구는 글로벌 수준에 근접해 있지만 이종 분야 간 융합은 글로벌 수준과 상당한 격차를 보인다. 또 융합기술 연구개발(R&D) 가운데 과학기술 표준분류 상에서 2개 분야를 선택한 과제가 78.25%, 3개 분야 이상을 선택한 과제는 21.75%로 융합 범위가 제한적이다. 과학기술-인문사회학 간 융합과제 비중은 0.52%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융합연구사업을 추진하는 경로가 더 다양화돼야 한다.
둘째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주관으로 연간 900억원 규모의 융합연구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이를 제외한 출연연 간 순수 융합연구비는 연간 700억원 규모다. 이를 합치면 연간 약 1600억원 수준의 예산이 출연연 간 융합연구에 투입되고 있다. 그런데 NST의 융합연구사업은 연구비 증액은 거의 없는 상황에서 과제 수만 증가하고 있다. NST 융합사업 외 출연연 간 융합연구비는 2018년 748억원 규모로 출연연의 주요 사업비에서 7.3% 수준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출연연 간 융합연구비를 주요 사업비의 15% 수준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NST 융합사업 역시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우리나라 정부의 R&D 성공률은 99.5%에 이르지만 사업화 성공률은 20% 수준에 불과하다. 융합기술 R&D 사업화 성공률 또한 3.27%로 저조하다. 이와 함께 융합 연구과제 종료 후 인력, 장비, 시설, 연구 성과의 연속적 활용 시스템도 미비하다. 이에 따라 탐색 연구→선행 연구→실용화 연구→사업화로의 연계·확장 프로세스를 활성화하고, 사업화 성공에 대한 동기 부여가 꼭 필요하다. 융합연구 종료 후 연구단 구성원을 위한 적합한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등 제도화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21세기 전반부의 격변을 목도하고 있다. 이러한 격변을 기회로 삼기 위해 우리 국가혁신시스템을 위대하게 재편해야만 한다. 국가 R&D 혁신 플랫폼이라는 기대 역할을 부여받은 출연연 간 도전적·창의적인 융합연구가 활성화되는 모습을 기대한다.
김명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원장 joonkim@etr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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