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필자는 코로나19 백신을 맞았다. 몇년 전 신장이식을 받아 만성질환자로 분류돼 속칭 '아재백신',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았다. 맞은 직후에는 아무 일이 없었지만, 일주일 정도 지나 무리한 일정을 보낸 저녁엔 근육통을 느꼈다. 적어도 내 경우에는 백신 안전성은 신뢰할 수 있을 것 같다.
백신 접종이 시작된 지도 어느덧 3개월, 백신 부족 현상도 조금씩 완화돼 방역 당국은 집단면역도 앞당길 수 있다고 예상한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백신 문제로 전전긍긍하던 지난 겨울이 떠오르는 한편, 백신 수급을 여전히 해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점은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우리나라 기업도 백신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지만 세계로 눈을 돌려보면 우리나라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미국, 영국은 물론이고 러시아나 중국, 인도보다도 뒤져 있다.
가장 놀라운 것은 최초로 코로나19 백신을 개발한 국가가 글로벌 제약회사를 보유한 미국이 아닌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러시아 정부 발표에 따르면 2020년 '국가 백신 계획 예산'은 2012년 대비 무려 375%(848억여원→4033억여원)나 늘어났다. 워프 스피드 작전으로 10조원 단위 돈을 투자한 미국에 비해 턱없이 적지만, 러시아는 1차 팬데믹 이전부터 백신 개발 필요성을 정부 차원에서 언급하고 있었다. 이 국가 백신 계획에는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생물유기화학연구소, 일반 유전학 연구소 등과 카잔-크림 연방대, 상트페테르부르크 폴리텍 등 연구소와 대학이 연합으로 참여했다.
여러 상황을 고려할 때 러시아 정부는 방역체계를 구축하기보다 백신 개발을 우선시했지만, 우리가 눈여겨볼 점은 개발 단계에서 제약회사뿐만 아니라 의사는 물론 과학자들이 대거 연합해 참여했다는 점이다. 실제로 세계 최초 코로나 백신인 '스푸트니크V'는 국립 가멜리아 전염학·미생물학 연구센터에서 개발됐다. 이 연구센터는 1891년에 지어진 과학센터로, 주로 역학이나 의료, 분자 미생물학, 감염성 질병 면역학 분야에서 기초와 응용연구를 수행하며 의사와 과학자가 리더로 포진해 있다.
그 결과 현재 러시아는 바이러스 벡터 방식(AZ)은 물론 mRNA(화이자, 모더나), 불활성화 바이러스 방식 등 세 가지 플랫폼을 기반으로 한 백신 개발에 성공한 유일무이한 국가가 되었다.
한국 상황은 어떨까. 현재 5개 회사가 7가지 종류 백신을 개발하고 있지만,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 우리나라가 코로나19 백신 개발에 투입하는 예산은 러시아 8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490억원)이었다.
사실 지원보다 가장 큰 문제는 과학자와 의사 간의 긴밀한 협업이다. 이 역시도 정부가 유도한다고 하지만 기업이 직접 알아서 파트너를 찾아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면 mRNA 백신의 경우, 분자를 인간 세포 속으로 흡수시키려면 지질 나노입자로 이를 코팅해야 하는데, 이 분야는 공학의 영역으로 의학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아스트라제네카가 옥스퍼드대와 협업체를 구성한 것도 의학 분야뿐만 아니라, 기초과학과 공학에서의 협력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러시아 경우 (국가 체제상 모두 국영이기는 하더라도) 기업과 연구소, 대학은 분야를 넘어 긴밀하게 협력했고, 그렇기 때문에 더 빠르게 다양한 방식의 백신을 선보일 수 있었다.
지난 2월, 우리나라는 블룸버그 국가혁신지수 1위에 올랐다. R&D, 제조업, 첨단기술, 특허 등이 그 원동력이었다고 한다. 러시아는 24위로, R&D와 첨단기술 점수는 한국과 비교도 되지 않는 수준이다. 그런데도 한국의 코로나19 백신 개발은 한참 늦어졌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R&D, 첨단기술은 각자 분야에서 사일로(silo)식으로 발전해왔다는 방증일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 정부가 지원은 물론이고 과학기술계와 의학계의 힘을 모으는데 조금 더 빠르게 움직였다면 적어도 지금처럼 백신 수급이 외국 상황에 따라 오락가락하는 혼란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코로나19가 지난 1년 반 동안 전 세계는 물론 한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을 고려한다면 '혁신지수 1위 국가임에도 하지 못한 일'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반성, 그리고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 mhkim8@postech.ac.kr